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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개혁 기획 4편] 자본은 있는데, 왜 결정을 못 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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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개혁 기획 4편] 자본은 있는데, 왜 결정을 못 내리는가

한국 4대 금융지주가 달라지지 못하는 이유
지난 23일 외환당국 고강도 구두 개입으로 환율이 1460원대로 급락했다. 이 날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3일 외환당국 고강도 구두 개입으로 환율이 1460원대로 급락했다. 이 날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4대 금융지주들은 위기에 대비해 충분한 자본을 쌓아 왔고, 그 자본을 운영해 일정 수준의 이익도 꾸준히 만들어냈다. 생존을 걱정해야 할 단계는 아니다. 자본 적정성, 유동성, 손익 구조 어느 하나 치명적인 취약점이 드러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4대 지주 모두 장부 가치 아래에서 거래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할인은 일시 오해라기보다 반복된 판단의 결과로 굳어졌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진다. 왜 이익이 부족한가가 아니라, 왜 이 구조와 이 경영진의 선택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가이다.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결정을 만들어내는 구조이며, 동시에 그 구조 안에서 결정을 하지 않기로 선택해 온 사람들의 책임이다. 한국 금융의 문제는 성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과가 그 수준에 머물도록 방치해 온 구조와 선택의 결합에 있다.

전략은 많았지만, 선택은 없었다


4대 금융지주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전략의 과잉이다. 디지털, 비은행, 글로벌, 자산관리, 플랫폼이라는 키워드는 어느 지주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중장기 계획도 있고, 투자 로드맵도 있다. 그러나 그 전략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선택지를 밀어내며 자본과 조직을 끌고 가는 장면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금융지주 구조는 계열사를 병렬로 관리하고, 판단은 합의와 조정으로 이뤄진다. 이 구조는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경영진이 반복해서 가장 무난한 선택을 택해 왔다는 점이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선택, 실패의 책임이 분산되는 선택, 단기 실적을 흔들지 않는 선택이다.

시장은 이 선택을 정확히 학습했다. 무난함은 위기를 막았지만, 기대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리고 기대가 바뀌지 않는 기업의 주가는 결국 할인된다.

자본 많을수록 커지는 책임


자본이 많아질수록 경영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동시에 선택하지 않았을 때의 책임도 커진다. 위기에 대비해 쌓아둔 자본이 많아질수록 조직은 보수적으로 변하지만, 시장은 그 보수성을 더 이상 미덕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익이 안정되면 변화의 필요성은 흐릿해진다. 당장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 상태를 성장의 준비로 읽지 않는다. 결정을 피한 경영 선택의 누적으로 읽는다. 구조는 결정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피한 결정의 책임까지 대신 져주지는 않는다. 저평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형성됐다.

CEO에 대한 냉정한 평가


KB금융: 양종희 CEO

안정을 완성했지만, 시장은 ‘관리의 끝’을 보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양종희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분명하다. 위험을 제거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위험을 감수해 보상을 만드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본 관리, 리스크 통제, 내부 안정화라는 과제는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 다음 단계를 보지 못했다.

KB금융은 가장 높은 자본 여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 자본을 어디에 걸겠다는 명확한 선언을 하지 않았다. 은행 중심 구조를 유지하는 선택은 의도였고, 비은행은 성장 축이 아니라 완충 장치로 남았다. 시장은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안정성은 극대화했지만, 그 안정성을 평가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더 냉정한 평가는 이 문장으로 요약된다. “지금의 KB는 더 나빠질 이유도 없지만, 더 좋아질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구조의 한계가 아니라, 양종희가 자본을 걸지 않기로 선택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시장의 인식인 것이다.

신한금융: 진옥동 CEO

선택지는 늘렸지만, 결단을 반복해서 유예했다

진옥동에 대한 시장 평가는 능력보다 결정의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디지털, 글로벌, 비은행, 플랫폼 어느 하나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 문제는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최우선으로 격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진옥동의 경영을 이렇게 표현한다.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그 때문에 아무 것도 확정하지 않는다.”

자본 배분의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았고, 무엇을 포기할 것 인지에 대한 신호도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 신한금융은 선택지가 많음에도 시장에서 정체성은 흐려졌다.

시장의 평가는 명확하다. “진옥동이 전략을 설명했지만, 전략에 자신의 임기를 걸지는 않았다.” 신한금융의 저평가는 가능성 부족이 아니라, 집중을 끝내 선택하지 않은 대가다.

하나금융: 함영주 CEO

방향은 맞췄지만, 결과는 진행 중이다.

함영주에 대한 시장 평가는 긍정과 유보가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금융이 해외 사업이라는 비교적 분명한 방향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인정받는다. 실제 성과도 있다. 문제는 그 방향이 그룹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격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해외를 말했지만, 해외에 그룹의 성패를 걸지는 않았다.”

자본 배분은 여전히 분산돼 있고, 해외는 핵심 엔진이라기보다 잘 작동하는 선택지로 남아 있다. 이는 구조 때문이 아니라, 리스크를 끝까지 끌어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시장은 하나금융을 이렇게 평가한다. “방향은 맞았지만, 결단은 절반에 그쳤다.”

우리금융: 임종룡 CEO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시장은 ‘다음 장면’을 보지 못했다

임종룡에 대한 시장 평가는 가장 직설적이다. 자본을 지켜냈다는 점, 위기 관리 능력은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본을 어디에 걸었는가, 무엇을 포기했는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시장에서는 우리금융을 이렇게 말한다. “관리에는 합격, 성장 리더십은 미검증.”

방어에 머문 선택은 이해되지만, 그 선택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임종룡에 대한 평가는 구조가 아니라 선택의 공백에 대한 평가다. “아직도 증명 단계에 머문 CEO.”

구조와 사람의 책임은 분리되지 않는다. 한국 금융지주의 저평가는 구조의 결과이기도 하고, 그 구조 안에서 반복된 경영진의 선택에 대한 누적 평가이기도 하다. 시장은 구조를 변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같은 구조에서도 더 과감한 선택을 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는 제약이다. 그러나 결정을 하지 않은 책임은 사람에게 귀속된다. 시장은 이미 이 두 책임을 분리하지 않는다.

CEO가 결단하면 구조 문제라도 극복 가능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금융의 저평가는 종종 구조의 문제로 설명돼 왔다. 지주 체제의 한계, 규제 환경, 보수적 문화가 반복해서 언급됐다. 그러나 이 설명은 더 이상 시장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구조는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구조는 결단에 의해 바뀐다. 그리고 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주체는 오직 CEO다. 같은 구조 안에서도 어떤 CEO는 자본을 걸었고, 어떤 CEO는 피했다. 같은 조건에서도 어떤 선택은 미래를 만들었고, 어떤 선택은 현상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시장은 이제 구조를 보지 않는다. 금융지주의 CEO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이코노믹의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누가, 언제, 무엇을 걸었는가. 누가 책임을 감수했고, 누가 관리 뒤에 숨었는가. 저평가는 우연이 아니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결단을 미룬 경영에 대한 기록이다. 구조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CEO는 듣는다. 그리고 듣는 순간, 선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