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찬 한국세무사회장은 최근 국제조세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이 같은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세무사들은 지금까지 국내 세금문제에 치우쳐서 일하다보니 국제조세 문제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은 국세청에서 세무조사가 임박할 때쯤 대부분 대형회계법인에 상담을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 회장은 “제가 그 임원한테 세금문제는 세무사가 전문가인 만큼 앞으로 우리 세무사들에게 세무 상담을 의뢰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봤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며 “앞으로도 미국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을 초청해 국제조세업무도 세무사의 업무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관세청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세무사회장에 당선돼 업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외부세무조정계산서제도 관련, 조정반 지정대상에 법무법인을 제외하는 시행령개정안을 통과시켜 세무사의 업역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제29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일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으신지요?
“작년 8월 제가 회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외부세무조정제도를 규정하고 있던 소득세법과 시행령 등이 법률위임이 없는 제도로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어요. 이 외부세무조정제도의 법제화 및 조정반에 법무법인을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 등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금문제에 대해선 세무사가 최고다라는 자긍심을 항상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이번에 외부세무조정제도와 관련해서 보여줬듯이 변호사들이 세무영역까지 넘보지 못하도록 1만2000여명 세무사들이 단합된 힘을 보여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 세무사회 역사상 차관급 공직자가 출마한 것도 처음이고, 관세청장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요. 어떻게 세무사회에 오게 되셨는지요?
“세무사회 54년 역사상 차관급 고위공직자 출신이 세무사회장에 출마한 것도, 당선된 것도 제가 처음일 겁니다. 저는 국세청과 기획재정부, 대통령비서실, 관세청장 등 33년 3개월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작년 선거 때도 전국 3500여 세무사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면서 회원들의 고충이나 불만사항을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회원들이 믿고 뽑아 준만큼 저의 모든 역량을 이쪽에 쏟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 33년이라는 공직생활을 마치면서 본인이 평가하기에 가장 잘했다는 점을 꼽는다면요?
“저는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좌우명을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약한 자에게는 약하게’로 정하고, 이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근데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거꾸로 가는 것 같아요. 이를 좀 바꿔보려고 강한 자에게는 좀 더 엄격하게 규정을 적용하고, 정보력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약한 자에게는 좀 더 융통성 있고 현실에 맞게 조치를 취하려고 애썼습니다.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1993년 실시한 금융실명제의 실무책임자로 참여한 것이에요. 당시 사무관 시절이었는데 비밀안가에서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외에도 나름 소신 있게 밀어붙였던 것이 재벌들 일감몰아주기 과세인데요. 이게 참 주위의 반대도 많았고 재벌들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었겠지만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관철시켰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공직생활하면서 나름 월급 값은 한 것 같아요.”
▷세무사회 업무가 국내에만 편향돼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향후 FTA 등 점점 글로벌화 되는 추세 속에서 세무사회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요?
“그동안 세무사 업무는 국내에만 집중돼 수출입 업체의 세금문제나 국제조세에 관한 사항은 회계사 업무처럼 인식된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세금문제는 세무사가 1인자인 만큼 국제조세에 관한 사항도 세무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세무사회는 국제조세에 관한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서비스시장 개방에 대비해 세무사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또 국제조세에 관한 교육을 확대하고, 국제조세전문세무사를 배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에 세무서비스 시장을 넓게 개방하고 있는 편이라 국내 세무사와 세무법인의 진출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무사회에서 올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나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우선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1만2000여명 회원들이 하나가 되는 세무사회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아울러 회원사무소에서 겪고 있는 직원난 문제를 해소하고 세무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교육도 강화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세무사법 등 세무사제도와 관련된 법령의 전면적인 검토와 함께 합리적인 방향으로 정비할 것을 추진하고, 세무사의 업역을 지금처럼 지켜나갈 겁니다. 앞서 강조했다시피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국제조세 분야에서도 우리 세무사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공인중개사들도 일부 변호사들이 업무영역을 침범한다면서 소송까지 불사한다는 얘기가 들렸는데요. 현재 세무사들에 대한 관련 업역침해는 어느 정도인가요?
“전문자격자들이 한정된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을 하다보면 자신의 업무영역에서 활동하는 것도 포화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유사 업무에 대한 업역을 넘보게 되게 되는 것이죠. 변호사의 경우도 매년 2000명 이상이 배출되고 있고, 전체 변호사 수가 2만명 가까이 활동하다 보니 경쟁이 매우 심합니다. 그래서 세무서비스 시장에 개입하려고 하는 시도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외부세무조정제도의 법제화로 우리 세무사 업무영역과 세무사의 자존심을 지킨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공직생활에 비해 가정에서의 본인의 점수를 매긴다면요?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세무사회장으로 나가셨을 때 가족들의 반대는 없으셨는지요?
“공무원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늘 바빠요. 저도 전세 살면서 아이들 키우다 집도 사고, 그러다보니 통장은 항상 마이너스였어요. 경제적으로도 고생을 많이 한 편이죠. 퇴직 후에 개인 세무사 사무실을 냈는데, 어느 날 장관 출신의 한 선배가 공직생활의 경험을 살려서 민간에서도 역할을 해보라 해 세무사회장에 출마하게 됐죠. 사실 처음에는 가족들도 많이 반대했지만, 막상 선거과정에서는 우리 가족들이 더 열심히 선거운동을 할 만큼 응원도 많이 받았습니다. 집사람이 미술관련 전공을 해서 그런지 미용기술도 배워서 아직도 저는 미용실에 안가고 집사람한테 머리를 자르고 있습니다. 요즘 부부금술도 나름 괜찮은 편이에요(웃음)”
인터뷰를 마치면서 백 회장은 일선 세무사 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세금문제에서 만큼은 세무사가 1인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앞으로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더 당당하게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으면 좋겠다”며 “1만2000여 회원이 단합해서 세무시장에 변호사의 진입을 차단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되는 세무사회를 그리고 당당하고 반듯한 세무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백운찬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백 회장은 1956년 2월 경남 하동 출생으로 지난해 6월 제 29대 세무사회 회장 선거에서 55.6%를 득표해 세제실장, 관세청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회장에 당선됐다. 당시 차관급을 거친 고위 관료 출신이 세무사 사무소를 차린 것도 처음이었고, 세무사회 회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행정고시 24회를 시작으로 33년3개월간의 공직생활에 본격 뛰어든 그는 진주세무서를 시작으로 조세심판원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금융실명제 실무를 맡아 주도적으로 제도안착에 참여했고, 기재부실에서는 현금영수증제도 도입과 근로장려세제 관련 전담 팀을 책임지는 등 굵직한 세무관련 정책문제를 두루 경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세제실장으로 일하면서 재벌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 제도를 도입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가끔 골프도 치며 여가생활을 즐기기도 하지만 요즘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같이 국선도 수련을 하고, 108배를 마친 뒤 출근한다고 한다. 이제는 누구한테도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아져 최근에는 세계국선도연맹의 최고지도자인 허경무 선사에게서 직접 받은 ‘국선도 통기법'을 수련하고 있다. 국선도 통기법은 국선도의 9단계 수련법 가운데 4, 5, 6단계인 진기단법, 삼합단법, 조리단법을 통칭하는 것으로 고도의 정신수련 단계로 알려져 있다. 세무사회장에 당선된 뒤로는 명함에 이메일주소 뿐 아니라 휴대폰 번호도 더 강조해 공개하면서 일선 세무사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하고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학력 및 주요경력 △1956년 경남 하동 출생 △동아대 법학과 및 대학원 법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세무학 박사 △행정고시 24회 △국세청 세무서 과장 △기재부 세제실 과·국장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최인웅 기자 ciu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