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방부는 경기도 벽제에 신축한 군 제7지구 봉안소에서 군 장례 절차에 따라 실미도 부대원 공작원 합동 봉안식을 엄숙히 거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봉안소에 안치된 유해는 총 20구이며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4명 중 2명은 유가족 동의에 따라 위패가 안치됐다.
1968년 박정희 정부 당시 청와대 침투를 목적으로 서울에 진입했던 북한군 124부대에 대한 보복으로 결성된 실미도 부대원 31명은 북파를 목적으로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지만 한반도 정세 변화로 3년 만에 버려졌다.
당국은 이들을 ‘무장공비’라고 했다가 이튿날 ‘군 특수범들의 난동사건’으로 정정하는 등 진실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건 발생 사흘 만에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정래혁와 김두만 공군참모총장 등 정부·군 고위간부들이 줄줄이 사임했고 살아남은 실미도 부대원 4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1972년 3월 10일 처형됐다.
이렇게 ‘북파부대’ 실미도 부대에 대한 진실은 묻히는 듯 했지만 사건 발생 32년 만인 2003년 12월 영화 ‘실미도’가 개봉되면서 역사 속에 지워졌던 ‘실미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동화 기자 dh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