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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 기승...사회적·구조적 원인도 찾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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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 기승...사회적·구조적 원인도 찾아봐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67)] 마음이 건강한 사회

한국 사회에 최근 소위 '묻지마 살인'이 발생하면서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과학수사대가 지난 3일 오후 차량 돌진 묻지마 흉기 난동이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근처 한 백화점에서 사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 사회에 최근 소위 '묻지마 살인'이 발생하면서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과학수사대가 지난 3일 오후 차량 돌진 묻지마 흉기 난동이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근처 한 백화점에서 사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일들이 곳곳에서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학교에서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끼리의 집단따돌림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이야기에는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신이 맡은 교실에서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학교가 학생과 교사에게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다.

최근에는 소위 '묻지마 살인'이라는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편하게 오가는 대낮에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이유도 모르고 공격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오죽하면 영국의 BBC 방송에서조차 최근 서울 신림역, 성남 서현역 등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생한 흉기 난동과 잇따르는 모방 범죄 예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묻지마'를 알파벳으로 그대로 표기한 'Mudjima'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폭력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유명했던 한국의 치안이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을 만큼 심각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먼저 그 원인을 찾는다. 그래야 다음에 동일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공식이 있다. 이 공식은 〔B=f(P×E)〕이다. 이 공식에서 'B'는 행동(Behavior)이고 'P'는 개인(Person), 그리고 'E'는 환경(Environment)이다. 이 공식을 쉽게 풀이하면, 인간의 행동은 개인적 변인과 환경적 변인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원인에 의한 것도 없고, 또한 환경적인 원인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행동은 개인과 환경의 영향을 같이 받지만, 행동에 따라 개인적인 원인 또는 환경적인 원인이 더 클 수는 있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경제적으로 빈곤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범죄가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여건과 범죄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지역에 사회적 지원을 더 많이 집중해 그곳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보장정책을 세우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방치한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부유한 삶을 산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개인·환경적 변인 따라 인간 행동 다르게 표출


경제적 빈곤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은 범죄 발생

하지만 빈곤한 지역에서 사는 모든 사람이 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비록 범죄율이 높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빈곤한 지역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보다는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그곳에서도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법을 잘 준수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다만 통계적으로 일반 지역보다 범죄율이 높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같은 환경에서도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은 개인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동일한 환경에서 범죄자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려대 심리학부 허지원 교수의 칼럼에 따르면, 2023년 8월에 29개국 15만 건의 성인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됐는데, 75세까지 13개 정신질환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을 경험하는 경우가 2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미국국립정신보건원에 따르면 18~25세 청년 세 명 중 한 명이, 26~49세 네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울 등 일부 정신건강 문제는 나이가 증가할수록 유병률이 세 배까지도 높아진다.

허 교수는 정신건강 실태를 조금 더 실감 나게 설명한다. 주말 오후, 지하철 한 량에 100명 정도의 승객이 타고 있다고 하자. 확률상 이 지하철 한 칸에는 지난 1년 동안 알코올 사용장애를 보인 사람이 8명, 최소 2주 내내 우울감을 느끼는 주요 우울장애는 7명이 되고, 1주일에 3회 이상 3개월 넘게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장애 5명, 특정 대상에 대해 병리적인 공포를 느끼는 특정공포증 4명, 기이하고 특이한 취미와 외양을 보이는 '조현형' 성격장애 4명, 주의력 및 충동성 문제를 보이는 ADHD 3명,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3명, 사회와 동떨어진 '조현성' 성격장애 3명씩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하철 한 량에도 정신건강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상(異常·abnormal)' 행동을 하는 개인들이 최근에 더 많아진 것일까? 요즘 빈번히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를 이해하는 데에도 〔B=f(P×E)〕 공식이 유용하다. 앞에서 범죄를 예로 들어 살펴본 것처럼 모든 행동은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정신병리의 원인도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개인적인 원인이고, 또 다른 원인은 환경적인 원인이다. 그동안 개인적인 원인으로 크게 대두한 것이 성격이다. 과거에는 성격 중에서도 '노력'과 '의지력'으로 이상 행동을 설명해왔다. 학생이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경우, 그 원인은 학생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이고, 또 의지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의 분발을 촉구하고 굳센 의지력을 키우기 위해 '채찍'을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뇌과학의 획기적 발전에 힘입어 '뇌의 문제'를 개인적 원인으로 보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뇌에 관한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치료는 '마음'이라는 일견 애매한 실체에 기반한 원인론에 비해 훨씬 정확하고 예리한 진단과 치료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뇌과학의 발달은 이율배반적이게도 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왜냐하면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뇌의 활동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덩달아 발견되기 때문이다.

성격적 취약점 있어도
적절한 환경 제공하면 정상적인 삶 가능

아동기는 뇌가 가장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학대나 심리적 외상(外傷)을 경험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증가하고 이는 뇌의 신경회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아동기의 뇌 발달은 뇌 영역 간 연결성의 형성과 발전에 의존하는데, 학대나 심리적 외상은 이런 연결성을 방해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또 지나친 성과 위주의 압력과 완벽에 대한 강박을 부추기는 환경은 뇌의 원활한 활동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환경 역시 이상 행동의 발현에 큰 영향을 준다. 정신과적 증상들이 종종 개인의 성격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징후들로부터 야기되는 사회적 심리적 무능력은 아주 나타나지 않거나 혹은 심하게 나타날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예를 들면 매우 취약한 몇몇 사람들도 온화하고 구조화한 사회적 환경 내에서는 우아하게 살아갈 수 있다.

성격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적절한 환경만 제공해주면 얼마든지 취약점을 만회하고 유능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異常) 행동의 발현을 완화해주는 이상(理想)적 환경은 개개인들에게 자기 존중감, 사랑, 스승, 자기 결정력 등을 길러줄 수 있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들을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마련해 준다면, 성격적으로 취약한 사람들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응집력이 없는 지역들을 실험적으로 통합시키고, 그 결과 주민들의 정신건강이 눈에 띄게 향상됨을 보여주는 연구들로 입증되고 있다.

성격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은 심리적 갈등이나 외부의 스트레스에 의해 생긴 불안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외부의 특정한 요구에 대한 심리적 각성 반응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동일한 자극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게 지각하고 반응한다. 이때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게 환경적으로 안정적이고 성과를 경험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면 자기 존중감을 획득할 수 있다. 자기 존중감은 자신이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바람직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유능한 존재라는 마음이다.

동시에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멘토나 스승을 만나 적응하는 데 적절한 훈련과 교육을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약점을 극복하고 유용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런 여건들을 갖춘 일차적인 사회는 가족이다.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자기 존중감과 자기 결정력, 사랑 등을 경험하고 익힐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약점을 보완하고 유능한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가족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거의 모든 사회지표에서 결혼한 사람이 더 오래 살고, 삶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가는 가족과 유사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다양한 지역공동체를 적극 지원하고 권장해야만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관계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은둔형 외톨이'들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이미 노출됐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서툴 뿐이다.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고, 사회적 비교를 통해 개인을 평가하는 환경 속에서는 계속 이상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권면은 종교적 영역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