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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고정관념을 더욱 고착시키는 고질적인 병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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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고정관념을 더욱 고착시키는 고질적인 병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77)] 확증 편향이 만연한 사회

우리 사회는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는 확증 편향이 만연한 사회이다. 요즘 산업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도 어떤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편향 현상을 보인다. 보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한 때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우리 사회는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는 확증 편향이 만연한 사회이다. 요즘 산업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도 어떤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편향 현상을 보인다. 보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한 때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한국심리학회는 우리나라에서 심리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려는 전문가들이 모인 학술단체다. 1946년 2월 설립됐으니 어언 80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사회과학 학회들 중 최고의 학회로 성장했다. 현재는 16개의 분과학회에 2만7000여 명이 넘는 회원이 소속돼 있다.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 학문으로서 인문과학에서부터 자연과학, 공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 공헌하고 있다.

16개 분과 중 셋째로 설립된 분과학회가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다. 사회심리학은 사회환경 속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또 사회의 문화·규범·제도 등의 규제를 받고 생활하는 인간의 경험이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다. 이런 사회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에서 2023년 12월 4일부터 2주간 학회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2024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현상'에 관한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확증 편향'이 회원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즉 사회심리학자들은 2024년 한국 사회가 '확증 편향'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확증 편향' 현상에 대해서는 언론 매체 등에서 한국의 정치 현황 또는 사회적 사건 등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 자주 다루었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심리학자들이 지적한 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확증 편향'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에서 공식적으로 '확증 편향'에 대해 자세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그 내용을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증거 적극 찾으면서 반박 증거는 완전 무시


"흔히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는 반면,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증거는 찾으려 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이라고 합니다.

확증 편향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확증 편향이 특정한 소수 집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결합되는 경우, 기존의 고정관념이 더욱 강화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소수 집단 구성원이 보이는 행동 중 선입견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반면,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행동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고정관념을 더욱 강하게 믿게 됩니다.

확증 편향은 특히 정치사회적 현안을 소비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정치사회적 성향에 맞는 뉴스는 선택적으로 취하고, 반대되는 뉴스는 의도적으로 배제하곤 합니다. 최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개별 사용자의 시청 기록과 검색 기록을 분석하여 시청자가 선호하고 지지하는 맞춤형 정보를 위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천 알고리즘은 확증 편향이 심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확증 편향이 항상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듦으로써 현명한 의사 결정을 방해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사회 갈등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확증 편향은 자동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조차도 확증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의료인들은 때때로 환자를 보면서 처음에 내렸던 진단과 일치하는 증상만을 고려하고, 진단과 일치하지 않는 증상에 대해서는 무시해 버리곤 합니다. 법조인은 어떤 사건의 용의자를 지목하고 나서는 그 용의자가 유죄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에만 초점을 맞추려 하고, 용의자가 무죄임을 시사하는 증거는 수용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추천 알고리즘', 객관적 상황 판단 어렵게 하고 현명한 의사 결정 방해


학자들은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에는 그 가설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는 반면, 자신의 가설에 반하는 결과들을 얻었을 때에는 이를 수용하지 않거나 연구 설계상의 오류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의사 결정 과정의 오진, 오판, 오류 등은 개인과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확증 편향에 빠지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노출되는 무한대에 가까운 정보를 모두 처리할 수 없는 '인지적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보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찾아보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지름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하고, 동일한 견해를 가진 타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무시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확증 편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두 가지 단계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확증 편향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확증 편향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의사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확증 편향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는 정보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와 상반되는 정보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특히 두 번째 단계는 말이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의식적이고도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증거를 세 가지 찾았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 증거를 세 가지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사고 과정 속에 녹아있는 확증 편향을 인식하고,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정보를 찾는 데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보다 올바르고 균형 잡힌 판단과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도 반대되는 증거 찾는 노력해야 확증편향서 벗어날 수 있어


2024년 한국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조심해야 할 확증 편향을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정치인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2024년 벽두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대의(大義)를 위한 정치를 하기보다 아군과 적군 두 패로 나뉘어 자기편의 이익을 위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다. 덩달아 일반 국민들도 두 패로 나뉘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판단을 하고 있다.

'편향(偏向)'은 말 그대로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자주 목도할 수 있는 편향으로는 '정치적 편향' 또는 '종교적 편향' 등이 있다. 편향은 인지적 현상이다. 그렇게 보려는 동기적인 목적이 있다기보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쪽으로 치우치게 정보를 수집하고, 그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확증 편향에서 보듯이 편향 자체가 부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편향 현상이 있다는 것은 편향적으로 보는 것이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부정적인 면만 있다면 벌써 편향적으로 살아가는 현상 자체가 없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향에는 확증 편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심지어 무생물 역시 편향을 가지고 있다. 동식물도 환경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요즘 많이 사용되는 인공지능(AI) 역시 편향의 영향을 받는다. 인공지능의 성능은 어떤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는데, 그 데이터를 사람이 제공하기 때문에 제공자의 선입견이 반영된다. 그만큼 편향 현상은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비록 편향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도 부정적 측면이 더욱 강하다면 편향에 영향을 덜 받도록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상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편향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이 편향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편향의 덫에서 빠져나와 나와 다른 쪽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다. 2024년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해다. 확증 편향의 영향에서 벗어나 얼마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