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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불꽃처럼 타올랐던 청춘을 찬(讚)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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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불꽃처럼 타올랐던 청춘을 찬(讚)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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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 있었든가/ 이리떼들이 순진무구한 백성들을 도륙하자/ 이국으로 모여든 청춘들 사연을 몰고 온다/ 상하이의 밤을 불면으로 숙성시킨 자들/ 시대의 우울 뒤집어쓴다/ 청춘들은 ‘대한독립’의 결기로 가득했고/ 애국애족으로 날이 가고 해가 떴다/ 불임의 시대에도 사랑은 피어나고/ 이룰 수 없는 약속, 약속으로만 행복했다/ 기관차는 연분홍 꿈을 나르지 못했다/ 이곳저곳 전투가 번지고/ 피 끓던 청춘들은 무명의 전사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 전설의 시대를 ‘화양연화’라 부른다.

3월 8일(금) 7시 30분, 9일(토) 2시·5시 세 차례,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과천문화재단·서울발레시어터 주최, 서울발레시어터 주관, 최진수 총연출의 전막 발레극 「화양연화」(花樣年華)가 공연되었다. 기억해야 할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이다. 공간은 조선의 경성에서 청나라 말의 상하이를 오간다. 겨를이 없어서 광범하지 않은 이야기, 대한독립(大韓獨立)을 위해 희생한 청춘들의 뜨거웠던 이야기가 전개된다. 「화양연화」는 견고한 이야기, 무대를 꽉 채운 볼거리, 경계를 넘나드는 발레의 매력과 현대감을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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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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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발레극 「화양연화」는 ‘2021 경기문화재단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공모사업 선정작’, ‘2019 경기문화재단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아름답고도 슬픈 발레는 오늘을 살아내는 멋쟁이 청춘을 불러온다. 그 누구보다도 뜨거웠던 청춘을 바친 젊은 독립투사의 이야기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대한독립을 위해 청춘은 화려하게 피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참혹한 사연들을 상상에 맡기고, 발레극은 동화적 공간, 터와 시대에 어울리는 움직임, 전통 시장 풍경에 어울리는 아이들의 놀이와 사연을 풀어 놓는다.

봄날의 경성, 하늘거리는 꽃잎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개구쟁이 이열(윤별)은 마을에 진입한 일본군에 의해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 모두를 잃고 반항하자 형무소로 끌려간다. 처절한 슬픔에 빠진 이열은 독립군을 꿈꾸며 조선에서 탈출한다. 이열은 상하이행 기차에서 일본 헌병으로부터 괴롭힘을 차단하며 아이를 보호하는 소천(김향림)을 돕는다. 소천은 이열의 인상을 소중히 간직한다. 상하이에 도달한 이열은 임정 요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진다. 거사가 진행될 일본군의 승전기념장에서 이열과 소천이 은밀히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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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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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는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부문마다 고급화를 지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울발레시어터의 고정 레퍼토리로써 자연스러운 연출력과 안무력이 두드러진다. 현란한 영상과 조화된 입체성을 살린 무대, 색상을 고려한 의상이 안정감을 준다. 비극적 서사를 엄숙한 공감으로 지속 시키지 않고, 관객과 넘실거리는 감정의 교류로 치욕스러운 역사를 자연스럽게 유추하게끔 만든다. 무장독립운동단 의열단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와 극을 부드럽게 전개 시키는 기교는 문화상품으로서의 「화양연화」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화양연화」는 평범 가운데 비범을 추구한다. 안중근처럼 특정 인물을 내세우지 않고, 관객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애국 의지를 불태우는 작품이다. 뮤지컬 「영웅」이나 영화 「영웅」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독특한 발레극이 된다. 이열의 고향 풍경 가운데 ‘소금 얻으러 가기’ ‘저고리 벗기’ 같은 다양한 극적 장면이 만들어지고, 총소리 ‘사이렌 소리’ 허밍 클래식 등의 사운드, ‘층간 만들기’ ‘좌우 구분’의 공간 분할 ‘열차’와 ‘카바레’ 등의 디자인, ‘비 내리는 광경’ ‘달리는 열차’의 ‘창밖 풍경’ 등의 영상 효과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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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화양연화」는 순서 상으로 아름다운 고향마을, 일본군의 진주, 상하이행 열차, 독립군에 합류, 대연회장에서의 결투, 영혼을 위로하는 ‘아리랑’의 구조를 축조한다. 부지런한 음악의 변주는 공연 분위기를 압도하고, 배경 막이 오르내리면서 시메트리 중심의 무대 구성은 깔끔했다. 조명은 색상, 강약, 이동을 고려하며 감정의 흐름과 어울렸다. 다양한 군무와 카바레 풍의 연회장은 시절 향수를 자아냈다. 푸른 색조 속으로 희생자들을 불러낸 마지막 회상 장면은 관객을 숙연하게 만들었고, 성악 ‘아리랑’은 분위기에 일조했다.

비극적 서사를 한민족 의지로 승화시킨 작품은 오만에서 빚어진 과거를 연상시킨다. 보통 사람들이 써낸 인상 깊은 장면들이 스쳐 간다. 카바레 장면은 전투 장면을 대치한다. 독립군, 일본군 모두 생존자가 없다. 연출자는 생존자가 없는 침략을 표현하면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만행이었음을 새삼 밝힌다. 두 사람이 탄 기차, 연출자는 안타까움에 이열과 소천 두 사람만이 기차에 앉아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아름다운 시절에 청춘들이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머리를 땋은 흰 원피스의 조선 여성의 군무는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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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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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진리는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애국 애족도 멀리 있지 않다. 고금의 진리이다. 「화양연화」는 맞닿은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연민과 적극적 실천의 방법을 구사한다. 아울러 융복합 예술의 장점을 살려 예술 장르 사이의 경계 허물기를 대범하게 실천한다. 이 작품은 부드러우면서도 춤의 문법을 어기지 않고 거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주었다. 최진수가 꾸린 발레극은 ‘예술을 위한 발레’나 ‘특정 계층을 위한 발레’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발레로서 구성이 탄탄하고, 등장인물에 대한 구성이 명확하고, 뚜렷한 주제성을 살리고 있다.

「화양연화」는 탁월함과 고른 기량의 발레 연기자들이 무용수 변화에 관계없이 움직임을 조율했다. 프로타고니스트에 윤별과 김향림을 비롯하여 칸요(배진영), 세르게이(오동구 카탄바스타르), 김성준(황경호), 아란(박시은. 고희정), 린(김도연)이 기교적 우위를 보여주었으며, 출연진(박경희 이진기 장지현 천예원 이수현 석지우 이지호 고미주 안지수 김민세 정지우 이단비 강다연 김가은 김태우 김하늘 박성은 박정현 윤상아 이수빈 이어진 도요타하루카 조형래 이현준 차은호 김태우 김종민)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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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총연출의 발레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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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의 서정은 「봄날은 간다」의 서정과 맞닿아 있다. 순간적인 비전과 운명에 의해 펼쳐지는 거대한 파노라마 ‘잃어버린 시간’(temps perdu)에 대한 사유(思惟), 구체적이고 견고한 이미지 구축에 집중한 발레극은 ‘서울발레시어터’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간다. 우리 시대에 그때의 열정은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고, 좌절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이 시대의 「화양연화」는 객관적 시각으로 발레적 기교에 집중하여 관객 모두가 수긍하는 수범적 교재의 기능을 하였다. 바람직한 문화상품이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