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 한 대 구입비와 한 사람 연봉이 각각 5천만 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첫해는 로봇 구입비와 인건비가 비슷하다. 다음 해부터는 차이가 커진다. 로봇에게는 노동자에게 드는 인건비 같은 비용이 없다. 전기료와 유지보수비만 들 뿐이다. 회계 장부에는 감가상각비만 계산해 올린다. 사용 기간에 따라 감가상각비도 줄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사라진다. 노동자에게는 해마다 5천만 원의 연봉이 나간다. 기업은 4대 보험료 절반을 내야 한다. 퇴직금도 쌓아 두어야 한다. 총무과 직원이 달마다 급여를 주고, 노동소득세와 4대 보험료를 계산해 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로봇에게는 이런 수고가 없다. 로봇은 인건비를 올려달라거나, 노동 강도를 낮춰달라고 파업이나 태업을 하지 않는다. 노사 간 거센 다툼이나 감정싸움도 없다. 이 또한 경영주가 로봇을 반기는 다른 까닭이다.
◇ 일자리 빼앗은 로봇, 세금과 4대 보험료도 내야 하나
노동자가 줄면 근로소득세 같은 여러 세금이 줄어 나라 살림에 타격을 준다. 로봇에게 소득세를 매기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사람 일자리를 빼앗았으니 노동자가 내던 세금을 대신 내라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로봇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여론도 이런 주장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인들은 앞다퉈 공약으로 내걸 것이다. 로봇은 발언권도 투표권도 없다. 일자리를 빼앗았으니 그만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에 마땅히 맞서지 못한다.
로봇 한 대에 일정한 소득세를 매기거나, 로봇이 사람보다 일을 얼마나 더 많이 하는지에 따라 세금을 매기자는 논의도 나온다. 로봇에게 소득세를 매기는 방식은 간단할 수 있다. 사람처럼 인적공제, 세액공제, 소득공제, 과세표준 같은 복잡한 계산 과정이 필요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이 일하는 업종이나 로봇 기종에 따라 매기면 그만이다. 기업주는 “로봇이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득세냐”며 불만을 터뜨릴 수 있다. 그럼에도 기업주는 로봇을 더 좋아할 것이다. 달마다 줘야 하는 인건비가 없고, 혹여 인건비를 못 줘 고발당할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줄면 4대 보험료 납부액도 준다. 반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많아져 보험금 나갈 곳은 늘어나니, 4대 보험 기금은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 로봇에게 노동소득세뿐 아니라 4대 보험료까지 매기자는 논의도 나온다. 로봇이 빼앗은 일자리만큼 소득세와 연결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금 보험료를 내고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젊은 세대가 반길 만한 이야기다. 같은 방식으로 로봇이 실업 보험료도 내게 하면,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에게 더 오랫동안 실업급여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로봇이 정교한 수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로봇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사람이 치료받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나아가 로봇에게 산업재해 보험료까지 매기자는 이야기도 나올 법하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면 로봇이 낸 산업재해 보험료로 치료받고 보험금도 받는다는 뜻이다.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고용주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로봇은 고장이 나도 고치면 그만이다. 기업주는 로봇에게 산업재해 보험료까지 물리냐며 억울해할 수 있다. 그러나 로봇 덕에 사람 일자리가 줄면 산업재해 발생 건수도 줄고, 그에 따른 형사처벌 걱정도 덜 수 있다. 로봇에게 소득세와 4대 보험료를 모두 매겨도 사람 인건비보다는 훨씬 적을 테니, 기업주는 여전히 로봇을 더 좋아할 것이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일하고, 사람은 로봇에게서 부양받는 새로운 세상, 이른바 ‘새로운 기준(뉴노멀)’은 희망일까, 고통일까. 사람은 무슨 재미와 의미로 살아갈까.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123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