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언 화백의 제13회 개인전
이미지 확대보기'피리 부는 사과'展은 시청각을 구사하며 모순과 은유의 신비감을 품고 있다. 일상적 감각의 대상인 사과가 시간성의 피리 부는 행위와 결합하면서 정지된 이미지 속의 울림을 발생시킨다. 정물과 행위 사이의 진동과 일상적 사물의 초월화는 김지언 화백의 내적 깊이감으로 연결되며 ‘이브의 사과’, ‘동시대의 사과’를 거쳐 ‘정지된 소리의 풍경’을 스친다, ‘사과’ 연작은 생성의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담은 뒤, 운기생동(運氣生動)을 마주한다.
고요하고 완결된 형태의 사과는 ‘피리 부는’ 행위로 인해 정물의 정적 세계가 호흡을 갖게 되는 순간으로 전환된다. 세잔의 사과가 구축적 질서 안에서 균형을 잡으려 할 때, 마그리트의 초현실적 기호가 그 질서를 흔드는 지점에 와 닿는다. 사과는 드디어 피리를 분다. 피리 소리는 작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호가 된다. 오랜 시간, 수행자의 자세로 화작(畵作)에 몰두해 온 작가에게서 자연스럽게 메아리로 퍼지는 내면의 울림은 깨달음의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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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서양화가 김지언은 사과가 가진 원형(圓形)의 틀을 깨고 네모나 변형된 모양으로 사과를 창조한다. 사과는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 존재의 정의를 내리며 해방된 자아의 모습을 보인다. 김지언의 작품들은 색채보다 공기의 흐름, 보이지 않는 소리의 질감을 시각적으로 번역해 낸다. 붓질은 불균질하며, 음표처럼 율동적으로 흩어져 있다. 사과의 표면에 번지는 빛은 단순하게 밝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반사’로 읽히는 시각적 은유로 작용한다.
김지언의 일부 작품은 사과의 형태마저 걷어내고 즐거운 피리 소리에 반응하는 리듬과 율동만이 실린다. 존재의 사과를 넘어, 내면의 소리 에너지를 존재 자체로 선언한다. 주제 의식은 기교에 의해 구체화 된다. 한지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느낌의 행위는 시간을 견뎌 단단해지고 많은 고민과 깨달음이 축적되어 피리 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자아의 깊이와 두께를 상징한다. 익숙한 사물과 피리의 결합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인간의 감정을 울리는 도구가 된다.
‘피리 부는 사과’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어두운 결말과 달리, 뿌리를 잘 내리며 약속을 잘 지키며 이 시대를 굳건하게 잘 살아내는 '우리'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환영과 위로의 노래다. 작품은 대상 재현을 넘어 ‘감각의 공명’을 시도한다. 사과는 과일을 떠나, 숨 쉬는 존재로서 자연음을 매개하는 신체로 재탄생한다. 회화는 구체적 형상을 벗어나 감각의 시로 상승한다. 색과 선은 언어처럼 발화되고, 보는 이는 듣는 자가 되며, 정물은 영혼의 악기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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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정물의 세계는 침묵 속에 존재한다. ‘피리 부는 사과’는 정지된 이미지 속 울림을 구현한 회화적 실험의 결정체이다. 그 회화성은 시각적 요소를 통해 비가시적 소리를 불러들이고, 미학적 상승은 감각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작품은 ‘들리는 시각’을 체험하게 하는 감각 사이의 교차점을 시각예술로 승화시킨 현대적 알레고리이다. 감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들려오는 존재의 목소리에 대한 시각적 응답은 살아 있는 시간의 한 호흡이 된다.
작가 김지언의 사과에 대한 상상은 늘 연두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과에 관한 한, 모양에 관계없이 무등(無等)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었다. 나래를 퍼덕이는 상상을 내면으로 가져가며 여유의 미소를 감추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반짝이는 금빛, 심연의 희망을 안은 짙은 청색, 치유와 허기를 물리치는 황토색, 수묵의 느낌을 가져다주는 먹빛을 존중한다. 그녀는 늘 푸른 마음으로 개인적 성장에 무관하게 푸른 잎사귀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피리 부는 사과'展은 형태, 색상, 질감 너머의 사과를 통해 감각의 질서를 뒤흔들며 빛의 떨림과 미세음을 탐구해 가는 공명(共鳴)의 시를 지향한다. 사과의 표면은 단단한 껍질이 아니라, 음악이 머무는 막처럼 투명하게 열린다. ‘보는 것’은 ‘듣는 것’이 되고, 정물은 하나의 생명과 악기로 재생한다. 정지된 순간이 차원을 달리하는 시간의 울림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는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향한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소리의 풍경’을 탐구하는 소리가 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