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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대전망] 중국식 피지컬 AI(具身智能) 전략과 K-제조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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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대전망] 중국식 피지컬 AI(具身智能) 전략과 K-제조의 길

산업연구원 조은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접견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현대차, 엔비디아의 국내 피지컬 AI 역량 고도화 협약 관련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접견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현대차, 엔비디아의 국내 피지컬 AI 역량 고도화 협약 관련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미·중 AI 패권경쟁의 심화

미·중 경쟁의 중심축이 관세에서 인공지능(AI)으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은 AI를 안보와 경제 패권의 핵심 수단으로 규정하고, 2025년 7월에는 'AI 행동계획(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했다. 동 계획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설, 반도체 공급망 강화, AI 모델 수출 촉진, 규제 완화 등을 포함해 미국 내 AI 생태계를 전면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며, 향후 AI의 주도권을 강화해 글로벌 AI 기술 표준과 생태계를 주도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AI가 군사, 경제, 안보 전 영역의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기술로 인식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AI반도체 수출통제 및 기술제재를 통해 견제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와 투자 제한이라는 압박 속에서도 ‘AI+ 전략(AI플러스)’을 전면에 내세우며 반격에 나섰다. 2025년 8월 국무원이 발표한 'AI+ 행동계획'은 AI를 제조, 의료, 교육, 농업, 교통 등 전 산업에 통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의 기술 봉쇄를 산업 전환의 계기로 삼아, AI를 미래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중국은 특히 ‘AI+제조’, ‘AI+도시’, ‘AI+교육’ 등 세부 과제를 설정해 지방정부와 기업이 즉각 실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대형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중소 로봇·센서·데이터기업까지 포함하는 AI 생태계가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2. 피지컬 AI(具身智能)로 향하는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2025년 중국 기술 업계에서는 피지컬 인공지능(AI)을 뜻하는 '구신지능'(具身智能, Embodied Intelligence·)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피지컬 AI란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처럼 물리적 기기에 AI를 통합하는 기술로, 미국에서는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이 CES2025에서 피지컬 AI를 "AI의 다음 단계"이자 "차세대 AI의 핵심"으로 지목한 바 있다. 중국이 2025년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업무보고에 처음으로 제시한 '구신지능'(具身智能)이라는 중국식 피지컬 AI가 국가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중국이 최근 가장 힘을 쏟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일본과 한국, 미국이 산업용·서비스 로봇에서 세계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로봇 굴기’를 선언하며 빠른 속도로 판을 흔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흐름이 단순히 몇몇 스타트업의 혁신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 대기업과 스타트업, 중앙정부의 육성전략, 지방정부의 보조금 경쟁 등이 맞물려 움직이는 전방위적 생태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먼저, 로봇 스타트업 중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항저우에 본사를 둔 유니트리(Unitree Robotics)이다. 젊은 창업자 왕싱싱(王兴兴)이 이끄는 유니트리는 이미 사족보행 로봇으로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다. 저비용, 대량생산이 가능한 로봇을 선보이며 2025년 춘절 무대에서 수십 대의 로봇이 동시에 춤을 추는 장면은 중국 대중문화의 상징적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H1과 R1 같은 휴머노이드 모델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유니트리는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로봇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는 중국식 ‘실용주의적 혁신’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중국 휴머노이드 굴기의 가장 큰 특징은 산업 간 융합이다. 전기차 기업들이 로봇에 뛰어들고, 로봇 기업이 다시 배터리·자율주행 기술을 흡수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XPeng, BYD, NIO 같은 자동차 회사들은 자율주행에 쓰던 센서·AI칩·제어 알고리즘을 그대로 로봇에 적용하고, 대규모 공장을 ‘로봇 테스트베드’로 열어 스타트업과 협업한다. 전기차의 모터, 배터리 관리 시스템, 열 제어 기술은 로봇의 관절과 움직임, 내구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거의 그대로 이식된다. '전기차는 바퀴 달린 로봇'이라는 인식이 중국 휴머노이드 확산에도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2023년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 발전 지도의견(人形机器人创新发展指导意见'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육성 방향을 제시했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10여 개의 지방정부는 각기 산업펀드를 설립하여 보조금을 통해 지역내 로봇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과학기술 혁신의 전초기지인 선전시는 10억 위안 규모의 산업 육성 기금을 마련했으며,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분야의 핵심 인재를 영입하는 기업에는 인재 1인당 연간 최대 20만 위안의 소득세 감면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항저우시는 로봇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의 장기 협업 모델, 공동 실험실, 인재 양성 플랫폼 구축을 장려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은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 지원과 지방정부의 보조금 경쟁, 민간기업의 투자 확대로 빠르게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과거 전기차 산업을 국가 주도로 육성했던 전략이 로봇 산업으로 복제되고 있는 셈이다.

3. 피지컬 AI 전쟁 속 K-제조의 길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피지컬 AI 시대 차세대 산업의 중심축으로 삼고, 정부의 지원 정책하에 빅테크와 스타트업이 동시다발적으로 투자와 연구를 확대 중이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육성과 피지컬 AI(具身智能) 전략은 단순히 신기술의 부상만이 아니다. 이는 중국 전기차 산업 육성의 복사판이자, 한국 제조업에도 직접적인 큰 도전이 되는 중국의 국가 프로젝트다. 이처럼 중국이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과 막대한 보조금, 대기업·스타트업의 전방위 생태계 조성으로 빠른 상용화에 나서는 동안, 한국 제조업은 ‘규모의 한계’와 ‘속도의 압박’이라는 현실 앞에 서 있다. 그렇다면 K-제조는 어디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먼저, 우리는 우리의 강점을 기반으로 단순한 기술 추격을 넘어, 반도체·정밀기기·모터·감속기 등 핵심 부품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을 쥐는 전략이 요구된다. 또한 산업계 전반에 걸친 신속한 협력 구조와 테스트베드 기반 정책 지원, 글로벌 공동개발 확대를 통해 AI-제조 융합 생태계를 조기에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 보조금 중심의 지원에서 벗어나 표준·인재·규제혁신을 아우르는 플랫폼형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결국 K-제조의 미래는 ‘AI 기술 추격’이 아닌 ‘AI 융합 주도’에 있다. AI와 제조의 결합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피지컬 AI시대, 한국은 기술·산업·정책을 통합하는 새로운 혁신 모델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의 필수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조은교<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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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구원 중국연구팀장, 한중 산업협력 및 경제안보 전략을 주제로 정책자문과 연구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