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정상 생산이 아닌 ‘가동 유지 가능 시간’ 계산하는 국면
이미지 확대보기나프타 고갈 카운트다운, 한국 유화산업이 흔들린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며 울산 석유화학단지는 ‘버티기 한계’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가격 급등을 넘어 원료 자체가 차단된 공급 충격으로, 산업은 이미 정상 생산이 아닌 ‘가동 유지 가능 시간’을 계산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호르무즈 봉쇄 2주, 멈춰가는 울산 공단
30일 업계에 따르면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나프타 재고는 평균 10~14일 수준까지 낮아졌다. 평시 20~30일 대비 절반 이하다. 일부 기업은 내부 조달로 버티고 있으나, 외부 의존도가 높은 NCC(나프타 분해설) 업체는 체감 재고가 더 빠르게 소진되는 구조다.
울산 공단의 현재, 숫자가 드러낸 ‘버티기 한계’
기업별 대응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 가동률을 5~10% 낮추며 원유 투입량을 줄이고 있다. 이는 나프타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화학 공정 투입량 축소로 직결된다. 일부 제품은 납기가 조정되고 출하는 장기 계약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S-OIL 역시 정유 공정 부하를 낮추며 화학 부문 가동을 연동 조정 중이다. 계약 물량은 유지되지만, 스팟 물량(장기 계약이 아닌 일회성 거래 물량) 대응 여력은 빠르게 줄고 있다.
대한유화는 외부 나프타 의존도가 높아 생산량 축소에 들어갔고 일부 설비는 조기 보수로 사실상 멈췄다. 출하 물량도 감소했다.
롯데케미칼은 NCC 가동률을 낮추고 일부 설비의 셧다운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납품 일정은 보수적으로 조정되며 출하 지연이 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산업이 이미 ‘감산 단계’를 넘어 ‘중단 시점 관리’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가격 급등의 이면, 시장 기능의 붕괴
나프타 가격은 한 달 사이 약 70% 상승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가격보다 공급 자체가 더 큰 문제로 작용한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던 기존 구조와 달리, 현재는 물량 자체가 부족해 가격 기능이 약화됐다. 기업들은 ‘비싸게라도 구매’가 아니라 ‘확보 가능 여부’를 고민하는 단계에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30일 시나리오, 산업은 버티지만 정상은 아니다
전쟁이 30일 내외에서 마무리될 경우, 산업은 심각한 손실 속에서도 붕괴는 피할 가능성이 있다.
가동률은 50% 전후에서 유지되며 제한적 생산이 이어진다. 정부의 수출 제한과 기업의 감산 전략이 일정 부분 효과를 낸다. 다만 원료 가격 상승과 생산 감소가 동시에 발생해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된다.
납기 지연이 본격화되고, 스팟 거래는 축소된다. 산업은 유지되지만 정상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
60일 시나리오, 선택적 셧다운이 시작된다
전쟁이 60일 이상 지속되면 재고는 사실상 소진 단계에 들어간다. 대체 수입선 확보는 제한적이며, NCC 가동률은 40% 이하로 떨어진다.
대한유화와 롯데케미칼은 생산 중단 압박을 직접 받게 되고, SK이노베이션과 S-OIL도 정유 축소 영향으로 화학 생산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
납기 지연은 구조화되고 일부 계약 이행 차질이 발생한다. 자동차와 조선 등 후방 산업으로 충격이 확산되며 ‘연결 리스크’가 본격화된다.
90일 시나리오, 산업 구조가 흔들린다
전쟁이 90일을 넘어서면 위기는 산업 구조 문제로 전환된다. NCC 가동률은 30% 이하로 하락하고 다수 설비가 장기 셧다운에 들어간다.
이 시점에서는 글로벌 경쟁 구도 변화가 나타난다. 에탄 기반 생산이 가능한 미국과 중동, 석탄 기반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나프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다.
제품 가격 상승은 제조업 전반의 비용을 끌어올리고, 자동차·조선 산업의 생산 지연과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현금흐름 악화와 투자 축소, 구조조정 압력까지 겹치며 산업 재편이 현실화된다.
울산에서 시작된 구조적 질문
이번 사태는 단순한 수급 위기를 넘어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정유와 석유화학이 긴밀히 연결된 울산 산업 구조는 평시에는 효율적이지만, 원료 차단 상황에서는 충격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작동한다.
결국 문제는 회복 속도가 아니라 이후의 구조 변화다. 원료 다변화와 공정 전환, 공급망 재설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이동하고 있다.
울산에서 시작된 이 충격은 한국 석유화학 산업 전체의 방향을 다시 묻고 있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