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라이는 명나라 시대 고려와의 바닷길을 이어주는 중요한 관문으로 해상방위의 요충지 역할을 했으며, 한중 우호관계의 선두적인 위치로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얼이 깃든 도시이기도 하다.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는 새로운 시대에 고려는 친원, 친명파의 극렬한 대립이 계속됐다. 결국 고려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공물을 보내 친교를 맺기로 하고 정몽주를 보냈다. 1372년 홍사범과 함께 고려의 사절단으로 중국으로 향하던 정몽주는 서해바다에서 조난을 당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고려에서 보낸 문서를 잃은 정몽주는 난징에서 문서를 재작성해서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에게 바쳤고, 이를 본 주원장은 정몽주의 글에 감탄해 고려에서 보내온 공물을 모두 되돌려 보내는 한편 고려인들의 명나라 태학 입학을 허락했다.
그러나 항만설비가 미비하고 대형 선박의 출입이 불편해 남동쪽에 있는 옌타이에 눌려 발전하지 못했으며, 최근 주류 생산으로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펑라이와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 사이에 있는 보하이해협에 해저터널이 건설된다. 중국 당국은 2600억 위안(45조 6014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총 길이 123㎞로 계획 중이다. 2026년 터널이 완공되면 일본의 세이칸철도 터널(53.85㎞)을 제치고 세계 최장의 해저터널이 되며, 동북 및 산둥지역의 교통과 물류 흐름에 획기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손정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