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 챔스 결승 중계] 리버풀 토트넘 손흥민 선발 확정 스포티비(SPOTV) 이영표-김명정 vs 장지현 김명정](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190601222835098704a01bf698f12114112470.jpg)
스포티비(SPOTV)와 스포티비온(SPOTV ON)에서 이영표-양동석이 중계한다.
스포티비2(SPOTV2), 스포티비플러스(SPOTV+)에서는 장지현-김명정 캐스터가 중계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강공원 세빛섬에서 열리는 스포티비 타임 단체 관람 행사에 함께한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한국 시간 오전 4시 부터 시작된다.
토트넘 손흥민의 선발 출장이 확실시 된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장소는 스페인 마드리드 메트로폴리타노이다.
토트넘의 손흥민은 맨유 박지성에 이어 두 번째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는 한국선수가 된다,
리버풀은 영어로 Liverpool Football Club 으로 쓴다.
리버풀은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이다.
리버풀은 현재 총 18회의 리그 우승을 한 바 있으며, 8번의 리그 컵 우승, 7번의 FA컵우승, 그리고 5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데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잉글랜드 내에서는 역대 최다 우승 기록으로 기록되어 있다. 리버풀은 1892년에 창단되었으며, 그 후 비약적인 상승세를 보여 1900 ~ 1947년도까지 5번의 리그 우승을 거두기도 했었다. 하지만 1950년대에는 주로 2부리그에 머물러 있었고 1959년 빌 샹클리가 감독을 맡기 전까지 리버풀은 1부리그 승격을 하지 못했다.
샹클리가 감독을 맡은 지 두 시즌 만에 리버풀은 다시 1부리그로 승격하게 되었고 또다시 리버풀은 세 번의 리그 우승과 두 번의 FA컵 우승과 한 번의 UEFA컵 우승을 일궈내게 된다. 과거 30년전의 리버풀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유럽축구에서 최강의 클럽 중 하나로 군림하였으며 1977 ~ 1984년까지 8시즌 동안 무려 4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1990년대에 약간의 침체기가 있었지만 2001년 UEFA컵 우승을 하였으며, 2005년도에는 다섯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해 잉글랜드 축구팀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빅이어 영구소장 팀이 되었다. 특히 1984년과 2001년도에는 세 개의 트로피를 차지한 팀에게 주어지는 트레블의 자격도 있었지만 우승한 대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여 미니 트레블로 불린다.
리버풀의 홈 유니폼 색깔은 원래 레드 앤 화이트였으나 1960년대에는 올 레드로 바뀌었다. 리버풀의 엠블럼은 창단후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1989년 힐즈브러 참사를 기리기 위해 엠블럼의 좌우에 불꽃을 집어넣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버풀은 현재 54,074명을 수용하는 안필드를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59,000석까지 증축 예정이다. 리버풀은 광대하고 다양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몇몇 클럽 등과는 오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이중에 현재 리버풀의 가장 큰 라이벌이라 볼 수 있는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노스웨스트 더비)와 이른바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불리는 에버턴 등이 있다.
현재 감독은 위르겐 클로프이며 주장은 조던 헨더슨이고 부주장은 제임스 밀너다.
리버풀 축구 클럽의 역사는 18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필드 경기장의 임대인이었던, 존 호울딩 (John Houlding)은 1891년 안필드구장의 전지분을 매입하고서는 임대료를 연간 100파운드에서 250파운드로 인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2] 다음 해인 1892년, 안필드 경기장에는 존 호울딩에 의해 1892년 3월 15일, 새로운 축구 클럽이 리버풀 시에 탄생하게 되며 8년간 안필드 경기장을 임대해 쓰던 에버턴은 바로 구디슨 파크로 구장을 옮겼다.
존 호울딩은 그의 독자적인 축구 클럽을 신설하기로 하였고, 마침내 1892년 3월 15일 리버풀 축구 클럽이 탄생하게 되었다. 구단의 최초의 이름은 "에버턴 F.C & 애슬레틱 그라운즈"(Everton F.C. and Athletic Grounds, Ltd.), 또는 줄여서 에버턴 애슬레틱이었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 협회가 이미 존재하던 에버턴 팀과 이름이 헷갈릴 수 있다고 이 이름을 기각하였다. 그래서 이름이 리버풀 축구 클럽(Liverpool F.C.)이 되었다.
리버풀은 첫 시즌에는 랭커셔 리그에 머물렀으나 우승을 차지하여, 1893–94 시즌에는 당시 2부 리그(Second Division)로 승격되었다. 전승 무패로 그 시즌에서 우승하였고,[3] 바로 1부리그(First Division)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1901년에는 클럽 사상 최초로 리그 챔피언쉽을 거머쥐게 되었고 1906년에도 또 한 번 우승하였다. 1914년에는 처음으로 FA 컵 결승에 올랐으나, 번리에 1-0으로 지고 말았다. [4]
리버풀은 1921 - 22, 22 - 23 두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 하였지만 그 이후 1947년 5번째 리그 우승을 할 때까지 단 한번도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1950년에는 FA컵 결승전까지 오르게 되지만 아스널에게 패하게 되었다. 이후 리버풀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1954년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5]
1959년 빌 샹클리가 감독을 맡을 때까지 리버풀은 1부리그로 승격하지 못했고 샹클리가 처음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그는 무려 24명이나 되는 기존의 선수들을 모조리 방출시키고 팀을 재정비하게 되었다.[6] 그 결과 1961년, 리버풀은 샹클리 감독이 부임한 지 두 시즌 만에 다시 1부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 2부리그로 강등된 이후 7년 만의 일이었다.
1961-62시즌 다시 1부리그로 올라온 빌 샹클리의 리버풀은 승격후 3시즌만인 1963 - 64시즌에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리버풀 통산 6번 리그 우승이었으며 1947년 마지막 우승 이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이듬해 1965년에는 리버풀 통산 첫 FA컵 우승을 차지하였고, 1965-66시즌에는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UEFA 컵 위너스 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연장전 끝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패하며 더블에 실패했다.
1972-73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동시에 첫 UEFA컵 우승을 거머쥐게 되는데 이 UEFA컵 우승은 리버풀의 첫 번째 더블이 되었다. 이듬해 74년에는 두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지만 이후 빌 샹클리는 명예롭게 은퇴하게 되었고, 어시스턴트 코치인 밥 페이즐리가 새로운 리버풀의 감독이 되었다.[7]
페이즐리 감독은 전 감독인 빌 샹클리보다 더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었고, 페이즐리가 팀을 맡은 지 두 시즌 만인 1975-76시즌에 리그와 UEFA컵을 우승, 또 다시 더블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다음 시즌에는 2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처음으로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우승에도 성공하고 FA컵 결승전에도 진출하여 잉글랜드 축구 사상 최초의 트레블 달성을 목전에 뒀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하면서 트레블 달성에 실패하게 되었다.
다음 시즌에 리버풀은 3연속 리그 우승과 2연속 유러피언 컵 우승에 성공해 네 번째 더블을 차지했다. 이 시즌 리그 우승 당시에는 총 42경기에서 16골만을 실점하여 기록을 세웠던 말 그대로 철벽의 수비를 자랑하던 리버풀이었다.[8] 페이즐리 감독은 1973-74시즌부터 1982-83시즌까지 총 9시즌 동안 리버풀을 이끌었는데 그동안 리버풀이 차지한 우승 트로피는 총 20개였다.(6번 리그 우승, 3번의 유러피언 컵 우승, 한 번의 UEFA컵 우승 그리고 3번의 리그컵 우승, 6번의 채러티 실드 우승, 한 번의 UEFA 슈퍼컵 우승) 그가 감독 재임시절에 들지 못한 트로피는 FA컵 하나뿐이었다.[9] 페이즐리는 1983년 샹클리가 그랬던 것처럼 명예롭게 은퇴를 하였고 그 자리에는 그의 어시스턴트 코치인 조 페이건이 맡게 되었다.
토트넘 홋스퍼 FC(영어: 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 토트넘 홋스퍼 축구단)는 잉글랜드 북런던 토트넘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축구 구단이다.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으며, 간단히 줄여서 토트넘 또는 스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7-18 시즌의 홈 경기장은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이전의 홈 경기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을 철거한 자리에 62,062석 규모의 새로운 홈 경기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신축을 위해 임대하여 사용했다.
1882년에 창단한 토트넘은 1901년 FA컵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이는 잉글리시 풋볼 리그 창립 이후 유일하게 논리그구단이 우승한 기록으로 남았다. 1950-51시즌과 1960-61시즌에 풋볼 리그 1부에서 우승하였고, 1961년 FA컵과 리그에서 동시에 우승하면서 더블을 기록하였다. 이듬해에도 FA컵에서 우승했으며, 1963년 영국의 축구 구단 중 첫 번째로 UEFA 컵위너스컵을 들어 올렸다. 1970년대에 리그컵에서 두번 우승하였으며, 1972년 UEFA컵을 초대 우승하였다. 1980년대에 FA컵에서 두 번, FA 커뮤니티 실드와 UEFA컵에서 각각 한 번씩 우승하였다. 이후 1990년대에 FA컵과 리그컵에서 우승하고, 2008년 리그컵에서 한 번 더 우승함으로써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모든 연대에서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구단의 상징은 축구공 위에 서있는 수평아리(싸움닭)이고, 모토는 라틴어인"Audere est Facere"로 실천이 곧 도전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같은 런던 연고의 팀들과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라이벌으로는 북런던 더비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아스널이다.
현재 감독은 포체티노이며, 주장은 위고 요리스, 부주장은 해리 케인이다.
토트넘이 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1908년 때부터 현재 시즌 까지의 성적표를 잘 나타낸 그래프이다.
1882년 9월 5일 화요일에 Mr. Cameron's School, 지역의 중등학교 학생, 그리고 당시 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홋스퍼 크리켓 클럽(Hotspur Cricket Club)의 멤버들에 의해서 홋스퍼 FC(Hotspur Football Club; Hotspur FC)가 창단되었다. 1883년부터 존 립셔(John Ripsher)가 초대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1884년 현재의 클럽명인 토트넘 홋스퍼 FC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다.
클럽명의 홋스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의 극중 인물로도 등장했던 헨리 퍼시('해리 홋스퍼'로 더 많이 불린다.)에서 유래하였다. 해리 홋스퍼는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의 아들로 1402년 험블턴 언덕 전투(Battle of Humbleton Hill)에서 용맹함을 과시하며 스코틀랜드를 격파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국왕 헨리 4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1408년 슈루즈버리 전투(Battle of Shrewsbury)에서 전사했다. 퍼시 가의 직계 혈통은 1670년에 맥이 끊겼다.
김재희 기자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