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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파키스칸 무샤라프 전 대통령…"독재자" vs "경제 성장"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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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파키스칸 무샤라프 전 대통령…"독재자" vs "경제 성장" 평가

9·11 미국 공격 알카에다 소탕 협력…2016년 비상사태로 사형 선고받기도

오랜 투병 끝에 5일(현지 시간) 두바이에서 사망한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전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오랜 투병 끝에 5일(현지 시간) 두바이에서 사망한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전 대통령. 사진=로이터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의 미국 본토 공격 이후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알카에다 소탕에 협력한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5일(현지 시간) 두바이에서 사망했다. 향년 79세.

1999년 군사 쿠데타 이후 권력을 장악한 전 4성 장군 무샤라프가 2016년부터 스스로 망명 생활을 한 두바이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6일 매장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지오 뉴스(Geo News)가 보도했다.

셰바즈 샤리프(Shehbaz Sharif) 총리는 트위터에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의 가족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떠난 영혼이 편히 잠들기를 기도한다"고 조의를 표했다.

무샤라프는 아밀로이드증이라는 희귀 장기 질환을 앓고 있었고 작년에 중병에 걸린 후 병원에 입원했다고 그의 가족이 전했다.

그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거의 30년 만에 가장 강력한 경제 성장을 보인 파키스탄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공로를 인정받았고, 무장 단체에 대한 그의 탄압을 지지하는 군대와 파키스탄인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10년에 걸친 통치는 또한 현 총리 샤리프와 같은 경쟁자들을 체포하고 그가 헌법을 정지시키고 언론을 검열하는 거의 6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의 반대에 대한 강경한 접근으로 손상되었다.

파키스탄 군사에 관한 여러 책의 저자이자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연구원인 슈자 나와즈(Shuja Nawaz)는 "그는 지속 가능한 경제 및 정치 개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초기 인기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으며 군사력과 기득권의 포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기독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무샤라프는 파키스탄이 자유주의 이슬람을 포용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이는 미국에 대한 9‧11 공격 이후 서방에서 그의 매력을 높인 접근 방식이었다.

무샤라프는 워싱턴이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에 합류하여 미군이 알카에다 무장세력을 추격하기 위해 육지로 둘러싸인 아프가니스탄으로 지상 및 공중 접근을 허용했다.

이 결정은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던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의 오랜 지지(지원)와 모순되며 무샤라프를 국내 무장단체의 표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적어도 네 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무샤라프의 극단주의자 탄압 이후 결성된 파키스탄 무장단체의 산하 조직인 테리크-에-탈레반 파키스탄(Tehreek-e-Taliban Pakistan)은 그의 죽음을 축하했다.

이 단체는 "국가의 명예와 존경을 팔아 넘긴 악명 높은 육군 대장이었다"고 성명서에서 밝혔다.

2006년 회고록에서 무샤라프는 알카에다에 대항하는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파키스탄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중 하나로 남아 있는 핵무장 국가의 군대에 자금을 투입하기 위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 성공적으로 로비했다.

국내적으로 무샤라프의 철권 통치는 혼란을 야기했다. 2007년 비상사태는 사법부와 언론 탄압으로 촉발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 해 그의 정부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총선 유세 중 정치적 경쟁자인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전 총리를 암살하기 전에 충분한 보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샤라프의 지원을 받는 정당은 몇 달 후인 2008년에 열린 투표에서 패배했다. 의회의 탄핵에 직면한 그는 사임하고 런던으로 도피했다.

무샤라프는 2013년 파키스탄으로 돌아와 의회에 출마했지만 낙마했다. 2016년 두바이로 떠났고 3년 뒤 비상사태로 궐석 상태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평결은 나중에 뒤집혔다.

무샤라프의 전 정치 보좌관 중 한 명은 지오 뉴스(Geo News)에 그가 가족의 고향인 파키스탄의 카라치(Karachi)나 국군 본부가 있는 군사중심지 라왈핀디(Rawalpindi)에 묻힐 것이라고 알렸다.


김세업 글로벌이코노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