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일본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할 수 없다"

공유
0

[초점] 일본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할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 G7 정상회의 앞두고 핵 관련 정책에 의문

오는 19일 일본에서 열릴 G7 정상 회의. 이미지 확대보기
오는 19일 일본에서 열릴 G7 정상 회의.
영화 ‘크림슨 타이드’는 핵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의 원자력잠수함에 국방부의 비상 명령이 전달된다. 구 소련(현 러시아)을 향해 원자폭탄을 실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라는 내용이었다.

수중 깊은 곳에서 이 명령을 받은 함장(진 해크먼)과 부함장(댄젤 워싱턴)은 갈등을 빚는다. 군인 정신에 투철한 함장은 미사일 발사를 고집한다. 유연한 사고를 지닌 부함장은 잘못 전달된 명령일 수 있으니 먼저 확인부터 하자고 맞선다. 자신들의 결정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승무원들까지 둘로 나뉘어 대립했다. 결국 부함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즉시 핵미사일을 쏘지 않고 명령의 오류 여부부터 확인했다. 현재 미국은 잠수함 함장에게 핵미사일 단독 발사 권한을 주지 않고 있다. 그의 잘못된 혹은 고의적인 결정에 의해 핵전쟁이 일어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일본의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 10일 핵 대피소의 모델 룸이 개장됐다. 대피소는 스위스 정부 표준에 따라 핵폭발에 의한 직접 피해뿐만 아니라 방사선 손상까지 막아낼 수 있게 설계되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에서는 핵 대피소에 대한 문의 건수가 4~5배 폭증했다. 핵공격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그만큼 늘어났다.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방상의 핵 작전 언급


한국과 일본은 핵무기 보유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2년 1월 현재 전 세계 핵탄두 수는 1만2705개로 추정되고 있다.

러시아가 5977개로 가장 많고, 미국이 5428개로 뒤를 잇고 있다. 두 나라가 전체의 90%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그다음이 중국으로 350개 내외의 핵탄두를 실전 배치했다. 미 국방부의 추정은 조금 다르다.

펜타곤에 따르면 중국의 핵탄두 수는 이미 400개를 넘어섰고 2035년에는 150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미 6차례의 핵실험을 마쳤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의 핵탄두 개수는 최대 20기로 추정된다. 북한은 55개까지 핵탄두를 늘릴 수 있는 핵분열성 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한반도와 그 주변은 이처럼 험악하다.

1967년 이전만 해도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만 핵무기를 보유했다. 현재는 북한을 포함해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란은 아직 핵실험을 하진 않았으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일본 내 불신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는 한때 1700개의 핵탄두를 보유했다.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물론 미국이나 소련까지 위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4년 핵무기를 포기하면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고 세계 3대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당했고, 핵무기 공격 위협까지 받고 있다.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은 지난 1월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을 방문해 "핵무기 작전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일본의 고위 관리가 '핵 작전'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일본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비핵 원칙을 채택했다. 그런 일본이 왜 미국과 핵무기 작전을 논의하고 싶다고 나섰을까.

핵 전쟁을 막기 위해선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이 유일한가? 이미지 확대보기
핵 전쟁을 막기 위해선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이 유일한가?

핵에는 핵으로


지난해 7월 G7 외무장관 회의는 중국의 핵무기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핵무기 정책과 계획의 투명성을 높일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2월 미국과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이행을 중단하는 법률에 서명했다. 이어서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 배치를 발표했다. G7 외무장관들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G7은 19일부터 열리는 히로시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재확인할 예정이다. 핵군축과 비확산에 대한 결의를 표명한 히로시마 선언을 채택하기 위한 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실제 핵공격이나 위협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일본 내에선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묻고 있다. 원자폭탄을 겪은 유일한 나라로서 핵무기 확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냉정한 현실은 일본이 계속 핵 논쟁을 금기로 여기면 현재의 흐름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크림슨 타이드’의 부함장은 핵전쟁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는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함장과 함께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재판관은 “두 사람 다 잘못했다. 자칫 핵전쟁을 일으킬 결정을 무조건 따른 것도, 그렇다고 엄연한 상부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도 모두 징계감이다. 그러나 또한 두 사람 모두 옳았다”고 판결했다.

관객들은 명령 불복종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핵전쟁을 막아낸 부함장의 현명한 판단에 박수를 보냈다. 핵전쟁은 공멸(共滅)이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있었기에 이런 논쟁 자체가 가능하다. 핵무기가 없다면 맞고 있을 수밖에 없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핵 작전에 관한 장관급 협의를 해오고 있다. 실행 결정 여부를 미국에만 맡겨두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결론은 이렇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도 NATO와 같은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수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