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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경기 침체 중국에서 시진핑과 당 원로 투쟁 격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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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경기 침체 중국에서 시진핑과 당 원로 투쟁 격화되나

시진핑 주석이 자신을 비난한 당 원로에 대해 분노를 터트렸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DB이미지 확대보기
시진핑 주석이 자신을 비난한 당 원로에 대해 분노를 터트렸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DB
중국 지도부의 내부는 항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중국 전·현직 지도부는 매년 여름 베이다이허에서 비밀회의를 갖는다. 중국이 나아갈 방향이 결정되는 자리다.

올여름 베이다이허의 분위기는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유력 원로들은 불참했지만 모처럼 시진핑 주석에 대한 비판이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사망한 장쩌민 전 주석의 최측근인 쩡칭훙 전 부주석이 “더는 국가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며 면전에서 시 주석을 공격했다.

시 주석에 대한 이례적인 비판이었다. 이에 발끈한 시 주석은 다른 장소로 자신의 측근들만 따로 불러 “이게 다 내 탓인가? 후진타오를 비롯한 전임 지도부가 남긴 유산 때문이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고 닛케이가 보도했다.

중국은 최근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닛케이는 시 주석과 전임 지도부에 속했던 원로 그룹의 갈등을 ‘혼란의 조짐’이라고 예고했다.

시 주석이 인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도 원로 그룹의 반발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중국 지도자들은 체면을 매우 중요시한다.

국제 행사에서 중국의 부동산 위기와 청년 실업 문제 등이 거론되면 시 주석이 체면을 구길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베일에 덮인 '죽의 장막'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시진핑의 이례적 불참

시진핑 주석은 인도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 불참한다. 리창 총리가 대신 참석할 예정이다. 중국 지도자들이 빠짐없이 참석해온 G20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사정이 심각해 보인다.

중국 경제는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 1993년까지 매년 8%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이후에도 본격적인 침체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의 중국 경제는 불황에 빠져 있다. 전례 없던 내리막이다.

중국 경제를 떠받쳐온 부동산 경기는 주저앉고 지방정부는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올여름부터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 중국군이 지난 7월 핵무기와 미사일 무기를 운용하는 로켓군 사령관의 축출 폭로로 혼란에 빠진 상태다.

'전랑(戰狼) 외교'를 주창해온 친강 외교부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해임됐고, 조직 내부에서는 여전히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총체적 위기에서 원로 그룹이 우려를 나타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시진핑 체제에서 처음 터져나온 불만 표출이라는 데 있다.

위기감을 느낀 원로들은 지난달 베이다이허 회의를 앞두고 따로 모임을 가졌다. 그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그들은 베이다이허에서 시 주석에게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분위기를 이끈 원로는 쩡칭훙이었다. 무명의 시진핑이 단번에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든 당의 원로다. 상하이방이 사실상 와해된 현재도 여전히 당의 막후 실세로 불리는 이유다.

당 원로로부터 예상외의 일격을 당한 시진핑 주석의 속내가 편할 리 없었다. 시 주석은 엉뚱한 곳에서 분노를 터트린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자신의 측근들 앞에서였다. 시진핑 주석의 분노 대목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외부로 흘러나왔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많은 문제들이 쌓여왔다. 지난 10년간 열심히 일했으나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어찌 내 잘못인가?”

원로들의 불만에 대한 항변이었다. "당신들이 남겨준 문제로 나라가 엉망이 됐다. 그런데 왜 내게 책임을 돌리나." 외부에 알려진 시진핑 주석의 분노 내용이었다. 그 말을 뒤집으면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남았다"다. 그러니 시간을 더 달라는 게 핵심이라는 닛케이의 지적이다.

시진핑 주석에 의해 쫓겨난 리커창 총리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자료이미지 확대보기
시진핑 주석에 의해 쫓겨난 리커창 총리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자료

◇ 리커창의 재등장

중국의 경제 침체 원인 중 하나는 대외 관계의 악화다. 수출은 부진에 빠졌고 중국에 대한 투자는 급격히 감소했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과의 불화는 중국 서민들의 삶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제로 코로나 정책과 시진핑 주석의 IT 기업 군기 잡기로 기업 활동은 위축됐다.

시진핑 주석은 인도 G20 정상회의에 리창 총리를 보내기로 했다. 8월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한 브릭스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브릭스에서 시 주석은 비즈니스 포럼 연설을 취소하고 대독을 시켰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올까 우려한 탓이었다.

중국은 현재 가장 중요한 대미 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시 주석은 적국이나 다름없는 인도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소를 띨 수 없었다.

시 주석은 내우외환의 협공에 시달리고 있다. 사방은 적의에 가득 찼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중국 북서부 간쑤성 둔황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석굴들로 잘 알려진 이 유명한 세계문화유산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그곳에 5개월 만에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중국의 당 원로가 있었다. 지난 3월 시 주석에 의해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강요받은 리커창 전 총리였다. 그의 깜짝 등장에 일부 중국 관광객 사이에 소동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갑자기 “총리, 총리” 하고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 사이에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리커창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응답했다.

이 영상은 중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금세 삭제됐다. 중국 지도부의 현재 속사정을 암시해 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리커창은 베이다이허 원로 모임에 참석한 직후였다. 국민들의 환호에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