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여전히 어린 아이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말라리아를 인류가 드디어 퇴치하는 일이 사상 처음으로 현실화될 수 있을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상 두 번째로 개발된 말라리아 예방백신의 접종을 공식적으로 권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개발에 성공한 이 말라리아 예방백신은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보급돼 왔던 ‘모스퀴릭스(Mosquirix)’보다 예방 효과가 뛰어날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해 인류의 말라리아 정복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WHO 사상 두 번째 말라리아 백신 ‘R21/매트릭스-M’ 사용 권고
2일(이하 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WHO는 이날 발표한 공지문에서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R21/매트릭스-M(R21/Matrix-M)’을 영유아 대상 말라리아 예방백신으로 권고한다고 밝혔다.
WHO가 말라리아 예방백신의 접종을 권고한 것은 GSK가 유니세프와 제휴해 개발해 그동안 사용해 온 모스퀴릭스(RTS, S/AS01)를 지난 2021년 사용 권고한 데 이어 사상 두 번째다.
모스퀴릭스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말라리아 예방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 보급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말라리아는 학질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소아를 중심으로 매년 2억~3억명에 달하는 사람이 감염되고 수백만명이 사망하는 질병이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매년 약 50만명의 소아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WHO는 설명했다.
WHO는 “R21/매트릭스-M의 보급이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R21/매트릭스-M의 등장으로 인류는 안전하고도 효과적인 사상 두 번째 말라리아 백신을 확보하게 됐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첫 번째보다 더 강력하고 더 저렴한 두 번째 말라리아 백신
R21/매트릭스-M은 GSK의 모스퀴릭스보다 말라리아 예방 효과도 크고 가격도 저렴한 것이 장점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말라리아가 아직도 극복 대상인 아프리카 가나의 방역 당국이 앞서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 위험이 가장 높은 연령대인 생후 5개월에서 36개월 사이의 영유아에게 사용 승인을 한 바 있다.
가나 식품의약국은 “R21/매트릭스-M은 기초 3회 접종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추가 접종을 받은 아동이 포함된 임상 2상 시험에서 높은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WHO도 말라리아 백신 기술 로드맵상 목표 수준인 75% 이상의 효능을 지속적으로 달성해 사용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임상 2상 시험에서 확인된 R21/매트릭스-M의 말라리아 예방효과는 77%에 달했다.
GSK가 지난 2019년부터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시범 접종을 한 결과 모스퀴릭스의 예방률은 39%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R21/매트릭스-M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제조할 수 있는 저용량 백신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말라리아를 아직 퇴치하지 못하고 있으나 경제적 부담 때문에 예방백신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 입장에서 매우 환영할 소식인 이유다.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R21/매트릭스-M의 가격은 도스당 2~4달러(약 2700~5400원) 수준일 정도로 저렴하다”면서 “보급은 내년 초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먼저 이뤄진 뒤 내년 중반부터 다른 나라들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R21/매트릭스-M의 1인당 필수적인 접종 횟수가 4회라는 점에서 R21/매트릭스-M의 1인당 실제 접종 비용은 최대 16달러(약 2만1700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모스퀴릭스의 실제 접종 비용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R21/매트릭스-M의 생산은 인도에 소재한 세계 최대 백신 생산업체 세룸인스티튜트가 맡고 있다.
이와 관련 BBC는 “세룸인스티튜트는 연간 1억 도스 이상의 R21/매트릭스-M 백신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라며 “이보다 효과도 낮고 가격도 비싼 모스퀴릭스의 현재 연간 생산량은 1800만도스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WHO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 말라리아 감염 건수는 약 2억4700만건으로 전년보다 1% 정도 증가했다. 사망자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10% 증가한 62만5000명에 달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