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국운을 걸고 진행한 우주 프로젝트인 달 탐사선 창어호의 발사를 지휘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군인들은 단 한 명도 건국 기념일 축하 행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 주석의 사정 칼날은 이제 군부를 겨냥하고 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마오쩌둥)’는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중국 국무위원과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던 리상푸는 최근 한 달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시진핑 주석을 수장으로 한 7명의 중앙 군사 위원회의 일인이다.
리상푸는 중앙군사위 장비 발전부장이던 지난 2018년 러시아로부터 수호이35 전투기와 S400 방공미사일 시스템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제재 대상에 올랐다.
그 결과 미·중 국방장관 회담이 상당 기간 열리지 못했다. 시 주석은 올해 3월 그를 국방부 수장 자리에 앉혀 전폭적인 지지를 과시해 왔다.
리상푸의 갑작스러운 낙마에는 그의 배경으로 지목돼 온 장마타쥔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시 주석이 73세의 장마타쥔을 그 자리에 연임시킨 이유는 군부 내 그의 신망 때문이었다.
시 주석이 권력을 차지한 후 임명한 군 최고위급 고위 장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시대에 임명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군부 내 안정을 유지하려면 중국-베트남 전쟁 같은 실전 경험과 업적을 가진 베테랑의 무게가 필요했다.
그러나 최근 단행되는 군부 숙청은 역학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패 문제는 단지 외부에 드러난 명분일 뿐이다.
장마타준은 9월 28일 저녁 연회에 참석했다. 이는 곧 그의 건재를 의미한다. 시 주석은 왜 머리인 장마타준을 그대로 두고 몸통인 리상푸만 잘라냈을까.
권력은 여전히 총구에 있다
눈길 가는 대목은 또 하나 있다. 군의 원로인 94세의 치하오티안이 축하 연회에 참석한 사실이다. 치는 국방장관 출신 가운데 최고령으로 군부 내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시 주석의 최측근들조차 참석하지 못한 이가 수두룩한 가운데 치하오티안은 건국 기념일 연회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9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그의 건재는 여전한 총구의 위력을 입증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장악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군부의 입김을 무시할 순 없다. 그가 유례없는 3연임에 성공한 이유도 배후에 군부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진핑 3기 들어 군부에 쏠린 무게 추가 현저히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리상루 장관의 전임이었던 웨이펭게의 실종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핵과 미사일을 운용하는 포병 출신이다.
이 부대에선 지난 7월 두 명의 고위직이 잇달아 해임됐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부대 간부들이 부패 혐의로 구속됐다.
파벌 내의 충성심 경쟁
시 주석이 군부의 대숙청을 단행하는 의도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지난 10여 년의 집권을 통해 군부 장악에 성공을 거두어 왔기 때문이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군부 내에서 주류 파벌의 내부 활동을 분열시킴으로써, 그들 사이에 충성 경쟁을 유도할 만큼” 시 주석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는 과거 중국의 황제들이 즐겨 사용했던 전술이기도 하다. 두 명의 유력한 후보를 승진 위치에 올려놓고 황제가 그들 사이에 균형을 잡으며 충성 경쟁을 즐기는 방식이다.
비슷한 상황은 최근 외교 분야에서도 벌어졌다. 친강 외교부장은 지난 7월 이후 모습을 감추었다. 그 자리는 그의 전임자였던 왕이에 의해 채워졌다.
시 주석은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는 당근을 들고 있다. 중국 고위 관리들은 시 주석의 어느 쪽 손이 자신에게 향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