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EU 고위관리들 다녀간 뒤 ‘이중용도 상품’ 러시아 수출 중단 저울질

더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주도해 온 미국과 유럽연합(EU)이 UAE와 러시아의 끈끈한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한 노력을 집중하면서 UAE가 이에 얼마나 호응할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과 EU가 UAE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해 미국과 EU가 강도 높은 경제제재 조치를 가해왔으나 UAE가 오히려 러시아와 교역 규모를 늘려가면서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들의 압박 전략에 차질이 빚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에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도 전쟁이 터지는 복잡한 상황이 새롭게 펼쳐지면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기조와는 다르게 아랍권의 경제강국으로 친러시아 행보를 보여온 UAE에 대해 미국과 EU가 동시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나서면서 UAE가 러시아와 교역 관계를 조정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美‧EU 고위 관리들 지난달 UAE 방문해 대러시아 수출 중단 압박
11일(현지시간) 중동권 유력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영국, EU, 미국을 대표하는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지난 9월 UAE를 집중적으로 방문해 UAE가 러시아와 교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알자지라는 “이들이 UAE에 강하게 우려를 표시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이른바 ‘이중용도’ 품목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경제대학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5월 UAE가 러시아에 수출한 전기 및 전자 장비만 2000만 달러(약 264억 원) 규모로 급증했다. 통신 관련 장비의 수출액도 6400만 달러(약 845억원)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난해까지는 수출 실적이 미미했거나 전무했던 품목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알자지라는 “컴퓨터 칩이나 전자부품 같은 제품은 러시아군이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특히 큰 제품으로 서방국들은 의심해 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방국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지속해온 대러시아 경제 제재의 빈틈으로 UAE를 러시아가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과 EU 측은 미국이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러시아 주변 국가 등이 러시아에 수출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함에 따라 UAE를 통해 더 많은 수출품이 러시아로 유입되고 있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실제로 미국의 경우 UAE를 비롯해 오만과 튀르키예 등 러시아가 전용할 수 있는 이중용도 상품을 러시아에 수출해 온 나라들에 대해 지난해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면서 “미국은 특히 UAE와 관련해 무인 드론과 전자장비를 러시아에 수출해 온 UAE 기업 두 곳에 대해 제재 조치를 지난 4월 내렸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는 “특히 무인 드론을 판매하는 UAE 업체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무인 드론과 로봇 관련 기술을 러시아에 판매해 와 미국 정부가 예의주시해 왔다”고 밝혔다.
UAE, 미국이라는 보호막 필요해 대러시아 수출 멈출 가능성
알자지라에 따르면 미국과 EU 고위 관리들이 지난 9월 UAE를 방문해 서방국들의 입장을 강하게 전달한 뒤 UAE 정부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입장 발표가 나온 것은 없다.
그러나 알지자리는 “만약 UAE 정부가 서방의 입장을 수용해 러시아에 대한 이중용도 제품의 수출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나설 경우 그것은 서방의 압력에 굴복해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여타 중동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데 기여해달라는 미국과 EU의 요청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서방권의 요청에 응하는 모양새로 UAE가 중동지역의 새로운 ‘평화 중재자’로서 위상을 드높이는 선택을 전략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인 셈이다.
러시아에 대한 수출 행위를 중단해달라는 서방국들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중동지역에서 UAE가 차지하는 위상을 확대하는 계기로 UAE 정부가 삼을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다.
마크 카츠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UAE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이중용도 수출에 대한 개입을 결정한다면 러시아와 교역관계를 유지하면서 얻는 이익보다 서방의 요구에 응해 얻는 이익이 크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UAE 정부가 그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미국과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러시아와 교역 관계를 이끌어갈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조치가 될 것”이라면서 “UAE 입장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중동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이 개입해 사태가 악화될 경우 미국이라는 강한 우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