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사운을 걸고 참여한 미국의 신형 고등 훈련기 사업에서도 설계 결함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미 몇 차례 결함 문제로 홍역을 치른 기종에서 또 사고가 발생하면서 보잉의 항공기 사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 로이터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로 향하는 알래스카 항공의 보잉 737 맥스9 기종 1282편은 이륙한 지 약 20분 후에 동체 왼쪽 도어플러그(여분 탈출구)가 갑자기 떨어져 나가며 비행기에 큰 구멍이 뚫렸다.
다행이 구멍 주위에 탑승객이 없었고 비행기도 긴급히 회항해 별다른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 연방항공국(FAA)은 6일 영내 자국 항공사 소속 동일 기종 171대에 운항 중지를 명령했다.
보잉과 관계 당국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가운데,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은 자사가 운용 중인 B737 맥스9 기종 여러 대에서 고정 볼트가 느슨한 도어플러그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이번 사고 원인은 보잉의 설계 결함보다는 동체 납품 회사인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의 조립 불량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다만, 정밀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이 기체 및 설계 결함으로 판명될 경우, 보잉은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타를 입을 전망이다.
737 맥스는 보잉의 중·단거리 민항기 베스트셀러 ‘보잉 737’ 시리즈의 가장 최신 기종으로, 2017년 첫 상업 운항을 시작했다. 각종 최신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신형엔진을 채택하는 등 737시리즈의 명성을 이을 기종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018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 라이언 에어 소속 737 맥스8 기종이 출고 두 달 만에 바다에 추락하고, 불과 4달 후인 2019년 3월 10일에는 에티오피아 항공 소속 737 맥스8 기종이 이륙 후 6분 만에 추락하는 등 연이어 대형 사고가 터졌다.
특히 이들 추락사고의 원인이 동일한 기체 결함 때문으로 드러나면서 보잉의 명성과 주가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이는 세계 각국 항공사에 판매된 동일 기종의 비행 중단과 구매계약 취소, 신규 판매 및 인도 중지 등으로 이어졌다. 2020년 11월 FAA의 재승인 이후에야 737 맥스는 다시 비행할 수 있었지만, 민항기 시장 주도권은 최대 경쟁사인 유럽의 에어버스로 넘어간 이후였다.
미국 공군의 차세대 고등훈련기 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이 사업은 미국 정부의 ‘보잉 살리기’ 및 경쟁사(록히드 마틴)의 독점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보잉의 ‘T-7’ 기종이 선정됐다.
하지만, 이 기종 역시 시제기의 테스트 중 특정 상황에서 조종이 불가능해지는 ‘윙락’ 현상과 사출좌석 결함 등의 문제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개발과 양산 및 정식 도입이 차일피일 지연되고, 개발비 및 기체 가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보잉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 정부와 미 공군도 이미 2023년 3월 기준 11억달러(약 1조4000억 원)가 넘는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그 외에도 보잉은 지난 2020년 미국의 차세대 달 탐사 계획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탐사선 수주전에서도 경쟁사에 밀려 조기 탈락하는 등 각종 신규 사업에서 잇달아 고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새해의 시작과 함께 발생한 이번 737 맥스9 기종의 동체 구멍 사고는 보잉 입장에서 기업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최악의 악재인 셈이다.
특히 보잉이 주력 기종인 737 맥스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올해 민항기 사업 실적 개선 계획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번 사고 발생 전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보잉이 737시리즈를 약 580대 인도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그로 인해 2024년 보잉의 매출과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3년 예상치인 375~400대를 훨씬 상회하는 양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동일 기종들의 운항이 정지되고, 원인 파악을 위한 조사가 장기화할수록 보잉의 737 맥스 판매 목표치 달성은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잉의 주가는 주말이 지나 장을 개시한 8일 기준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8% 급락한 229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