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성별 임금 격차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11일(현지시각) 액시오스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최근 발표한 인구 조사 소득 데이터는 남성과 여성 모두 지난해 실질 소득이 증가했지만, 이들의 임금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풀타임으로 일하는 여성의 중앙값 소득은 남성의 83%에 불과했다. 이는 2022년의 84%에서 감소한 수치로, 2000년의 74%에 비해 나아졌지만,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격차가 2003년 이후 처음으로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격차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여성들이 주로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경향,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그리고 고임금 직종에서 여성 비율 저조 등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의 불평등이 더 심각했다. 유색인종 여성들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이중의 장벽에 직면해 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 채용 과정에서의 편견, 직장 내 차별 등으로 인해 더 낮은 임금을 받거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이나 히스패닉 여성의 평균 임금은 백인 남성은 물론 백인 여성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2023년 3분기 데이터에 따르면, 백인 남성의 주급 중앙값을 약 160만 원(1200달러)로 볼 때, 아시아계 여성은 약 155만 원(1156달러, 96.3%), 백인 여성은 약 138만 원(1031달러, 85.9%), 흑인 여성은 약 115만 원(857달러, 71.4%), 히스패닉 여성은 약 107만 원(798달러, 66.5%)에 그쳤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어머니의 벌금(Motherhood Penalty)'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미국진보센터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흑인 여성과 히스패닉 여성은 자녀가 없는 같은 인종의 여성보다 각각 시간당 약 4000원(3달러), 약 6700원(5달러) 적게 벌었다. 이는 백인 여성의 격차(1달러)보다 훨씬 큰 수치이다.
구체적 사례로 2022년 전미여성법률센터(NWLC)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흑인 여성의 평균 학자금 대출 잔액은 백인 여성보다 약 2011만 원(1만5000달러) 더 많았다. 이는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의 불평등과 더불어 장기적인 재정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기술 기업들의 다양성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23년 기준으로 유색인종 여성이 고위 경영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5% 미만에 그쳤다. 이는 유색인종 여성들이 고임금 직종과 의사결정 위치에서 여전히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통계와 사례들은 유색인종 여성들이 직면한 ‘이중 차별’이 단순한 개념이 아닌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대학 교육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학과 고등학교 졸업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수십 년 동안 커졌고, 2023년에는 22~27세의 최근 대학 졸업생들이 고등학교 학위만 있는 동년배보다 연간 약 3,200만 원(24,000달러)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이는 1990년의 약 2,000만 원(15,000달러) 격차에서 크게 확대된 수치다.
이런 추세는 글로벌 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자리잡은 가운데, 성별 임금 격차 해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뿐만 아니라 인재 확보와 유지를 위한 필수 전략이 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런 움직임이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중에 급여 투명성 강화, 과거 급여 이력 공개 금지, 유급 가족 휴가 확대 정책을 통해 직장 내 성차별을 줄이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평등법 지지를 통해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도 함께 근절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만약, 카멀라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런 정책들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임금 공정성에 대한 더 강력한 법안, 기업 고위직의 다양성 확대, 육아 지원 정책 강화, STEM 분야 여성 지원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는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업들은 임금 체계를 재검토하고, 채용 및 승진 정책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성차별적 직장 문화를 개선하고, 임금 정보와 다양성 지표를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할 수 있다.
이런 정책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추가적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정의 실현과 경제적 효율성 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기회로 삼아, 기업들은 이를 전략적 투자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한국 기업의 경우, 이미 존재하는 성별 임금 격차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와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성평등 정책 강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ESG 경영이 강조되는 현 추세에 성별 임금 격차 해소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평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투자자도 기업의 성평등 정책과 실천을 주요 투자 지표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높은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실적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별 임금 격차 해소에 적극적인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크다.
성별 임금 격차 문제는 단순히 사회적 정의의 문제를 넘어 기업의 경쟁력과 국가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직결되는 중요한 과제다. 미국의 변화는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할 것이며, 이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기업에 중요한 과제를 안겨줄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