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대폭 확대한 관세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지만 경기 둔화와 일시적 유예 조치가 물가 상승세를 억누른 것으로 보인다.
13일(이하 현지시각) USA투데이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노동부는 4월 CPI가 전년 동기 대비 2.3% 상승하며 3월(2.4%)보다 상승 폭이 줄었다고 이날 밝혔다. 이는 지난 2021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연간 상승률이다. 전달과 비교하면 0.2% 올랐다. 3월에는 0.1% 하락했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수치가 예상보다 낮았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은 당초 4월 CPI가 전월 대비 0.3%, 연간 기준으로는 2.4% 오를 것으로 전망했었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역시 0.2% 오르며 연간 기준 2.8% 상승에 그쳤다. 근원물가 상승률 역시 4년 만에 최저치로 연방준비제도가 주목하는 물가 흐름이다.
이같은 물가 둔화 추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대중국 및 다수 국가 대상의 수입 관세 인상과 맞물려 있어 주목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초 미국 정부는 30%에 달하는 대중국 관세와 기타 국가들에 대한 최고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고, 같은 달 말에는 중국과 상호 협상을 재개하면서 일부 관세를 대폭 낮췄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기존 145%에서 30%로,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는 125%에서 10%로 줄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관세 효과가 본격화되면 올여름 이후 CPI가 다시 오를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벤 에이어스 내셔널와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수치는 올해 CPI의 바닥일 수 있다”며 “관세가 소비자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 CPI는 여름부터 뚜렷이 뛸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와 팬시언매크로이코노믹스는 오디오 장비(9%), 사진기기(2.2%), 가구(1.5%), 컴퓨터와 액세서리(0.7%) 등 중국산 품목에서 가격 인상 조짐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반면 의류 가격은 0.2% 하락했다.
식료품 물가는 전체적으로 0.4% 하락했다. 특히 계란 가격은 고병원성 조류독감 완화의 영향으로 한 달 만에 12.7% 급락했다. 아침 시리얼(-2.5%), 쌀(-2.3%), 닭고기(-0.3%), 베이컨(-1%) 등도 일제히 하락했으나 빵(1.6%), 생선·해산물(0.8%) 등은 올랐다. 외식 물가는 세 달 연속 0.4%씩 올라 연간 기준 4% 상승률을 보였다.
유가 역시 하락세를 이어갔다. 휘발유 가격은 전달보다 0.1% 떨어지며 3개월 연속 내림세를 기록했고 1년 전보다 11.8% 하락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4월 중순 레귤러 무연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3.14달러(약 4300원)로 한 달 전보다 0.06달러 낮았다. 세계 경기 둔화 우려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이 유가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주거비는 전달과 마찬가지로 0.3% 오르며 연간 상승률 4%를 유지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신규 임대료 하락이 기존 임대에도 점차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전체 물가 상승의 약 35%는 주거비가 차지했다.
자동차 보험(0.6%)과 수리비(0.7%), 의료 서비스(0.5%) 등 일부 서비스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금리 인하 여부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티븐 브라운 캐피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일시적 관세 유예 조치로 인플레이션 폭등은 다소 늦춰질 수 있지만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여력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