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136조 원 美 애리조나 투자... 핵심 기술 'CoWoS'로 AI 시장 주도
반도체 제조 넘어 '후공정'이 승부처… 美, 공급망 자국 내 완성 '속도'
반도체 제조 넘어 '후공정'이 승부처… 美, 공급망 자국 내 완성 '속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해외투자로 기록된 이번 발표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지만, 대만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첨단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스마트폰과 AI 응용프로그램부터 무기체계까지 모든 것에 동력을 공급하는 TSMC의 핵심 기술이 해외로 향하기 때문이다. 미·중 양국이 최근 파괴적인 관세를 일시 철회하며 임시 휴전에 들어갔지만, 미국의 반도체 규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해 기술 주도권 경쟁의 긴장감은 식지 않고 있다.
◇ 칩 여러 개 묶어 성능↑…AI 시대의 '게임 체인저'
지난 5월 AI 열풍으로 주목받은 대만 연례 무역박람회 컴퓨텍스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AI에 고급 패키징의 중요성은 매우 높다"면서 "나보다 더 고급 패키징을 강하게 밀어붙인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고급 패키징은 AI 반도체의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일반적인 패키징이 반도체 칩을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고 전자기기의 메인보드에 장착하는 공정이라면, 고급 패키징은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여러 다른 칩을 하나의 기판 위에 매우 촘촘하게 배치하는 기술이다.
여러 칩을 한데 모으는 방식은 한 회사 안 여러 부서가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협업이 원활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아시아 기반 사모 투자회사 트리오오리엔트 댄 니스테트 부사장은 "칩을 되도록 가깝게 배치하고 칩 사이 연결을 매우 쉽게 만드는 다양한 해결책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술 덕분에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고 전력 소비는 줄어든다.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고급 패키징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 美, '원스톱 공급망' 구축…반도체 독립 박차
미국 처지에서 애리조나에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과 함께 고급 패키징 시설까지 확보하는 것은 '화룡점정'과 같다. 시장조사기관 디지타임스 리서치 에릭 첸 연구원은 "미국이 첨단 제조에서 고급 패키징까지 완전한 공급망을 갖추게 돼 AI 칩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TSMC의 최고 고객사인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 거대 기술기업들에도 큰 이점이다.
현재 대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고급 패키징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효과도 있다. 니스테트 부사장은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대신 CoWoS(코워스)가 대만과 미국에도 있으면 훨씬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라며 지정학적 위험 분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15년 전 외면받던 기술, AI 덕에 화려한 부활
여러 고급 패키징 기술 가운데 TSMC가 개발한 'CoWoS'는 AI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 됐다. 오픈AI의 챗GPT 등장 이후 복잡한 연산을 필요로 하는 AI 응용프로그램이 지연이나 오류 없이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데 이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니스테트 부사장은 "엔비디아 패키징 공정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라면서 "AI 칩을 만드는 거의 모든 회사가 CoWoS 공정을 쓴다"고 잘라 말했다. 이 기술은 대만에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됐고, AMD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는 대만이 "CoWoS라고 말하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수요가 폭증하자 TSMC는 CoWoS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월 대만을 찾은 젠슨 황 CEO는 기자들에게 "현재 고급 패키징 생산 능력이 2년 전보다 아마도 4배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패키징 기술은 컴퓨팅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제는 많은 칩을 하나의 거대한 칩으로 합치기 위해 매우 복잡한 고급 패키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CoWoS 기술은 15년 전인 2009년에 이미 개발됐다. 당시 TSMC 공동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장상이 박사가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칩에 넣고 성능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을 이끌었다. 하지만 비싼 비용 탓에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장 박사는 2022년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컴퓨터 역사 박물관의 구술 역사 기록에서 "고객이 단 한 곳뿐이라 회사에서 정말 웃음거리가 됐고, 압박감이 엄청났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AI 열풍은 CoWoS의 처지를 극적으로 바꿔놓으며 가장 인기 있는 기술 중 하나로 부상시켰다. 장 박사는 "결과가 우리의 원래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패키징과 테스트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외주 반도체 조립·테스트(OSAT) 업체로 불린다. 현재 고급 패키징 시장은 TSMC를 필두로 한국의 삼성과 미국의 인텔이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JCET 그룹, 미국의 앰코, 대만의 ASE 그룹과 SPIL 같은 OSAT 전문 기업들도 주요 주자로 뛰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