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시설 공습 뒤 휴전 주도하며 중동 주도권 다시 쥐어

지난 24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중동에서 평화 중재자로 나서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 앞에 무력함을 드러냈다.
중국은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가 전체 원유 수입의 절반을 웃돈다.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가 중국 세관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최대 석유 수입국은 러시아였으나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오만·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카타르 등 중동 6개국이 중국 원유 수입의 50%를 넘긴다. 이란산 원유는 중국 전체 원유 수입의 10~15% 수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가 중국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을 이룬다.
이란 의회는 최근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검토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운송량의 25%, 석유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는 글로벌 에너지의 핵심 통로로, 이곳을 지나는 원유의 대부분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으로 간다. 에너지 분석 회사 보르텍사(Vortexa)에 따르면,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올해 6월 기준 하루 150만 배럴에 이르며, 이 물량의 거의 전부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 중국-이란 전문가 윌리엄 피게로아 교수는 "중국은 상황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피게로아 교수는 이어 "중국은 어떤 종류의 광범위한 분쟁에서도 이득을 얻지 못한다. 그 분쟁에 군사적으로 영향을 미칠 능력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의 중동 영향력은 경제적 측면에 집중돼 있고, 미국처럼 실질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은 이란 핵시설을 직접 공습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전면 휴전을 주도하며 중동 정세의 핵심 영향력 국가로 다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 시각) 소셜미디어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완전하고 전면적인 휴전이 합의됐다"고 발표했다. 그는 휴전 위반 시 강경 대응을 경고하며,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을 재차 확인시켰다.
미국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최근 폭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막기 위해 이란에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중국에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 요청을 다소 위선적이라고 받아들였으며, 구체적인 설득이나 압력 행사에는 소극적이었다.
상하이 국제학연구소 류종이 연구원은 "미국은 전쟁을 시작했고 이제 중국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막지 않도록 설득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무의미하고 사악한 난동"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라이히만대학교 아시아 전문가 게달리아 애프터먼은 "중국이 이란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중국은 워싱턴과 루비오의 명령에 따라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 2023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고, 2024년 팔레스타인 파벌 사이 화해를 주도하는 등 중동 평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러나 이번 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중국의 외교적 돌파구는 제한적이었으며, 중동에서 중국의 주된 입지는 여전히 상업적·경제적 협력에 머물렀다. 반면 미국은 중동에 공군 기지와 오랜 동맹을 두고 정치적·군사적으로 훨씬 더 깊이 관여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전쟁에서 자국민 3000명 이상(이란 현지)과 500명 이상(이스라엘 현지)을 대피시키는 등 인도주의적 조치를 취했으나 이는 당면한 이익 보호에 그쳤다. 중국 외교부는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공개하며 대피 노력을 강조했으나 실질적인 군사적·외교적 영향력 행사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중국은 중동 석유 공급망의 다변화를 위해 러시아·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공급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의 일부인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 등 대체 운송 경로 개발에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과다르 항구는 아직 충분한 취급·저장 용량이 부족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다르 항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여전히 잘못된 제안"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호주 국립대학교 중국-중동 관계 전문가 모하메드 알수다이리는 "미국의 힘은 유한하고, 정치적 여력과 전략적 여력도 제한돼 있다. 미국은 수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선임연구원이자 중국 전문가인 존 델러리는 "시진핑이 깨어나면 그는 미국이 다시 중동에 갇힌 것을 보게 된다. 미국은 인기 없는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시 주석과 중국은 스스로를 문제 해결자, 외교와 협상을 이용하는 초강대국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개입이 자원과 관심을 베이징에서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미·중 무역 긴장, 대만 문제 등 글로벌 핫스폿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대응 가능성도 중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중동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성에 치명적인 위협이 가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실질적인 군사적·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번 전쟁은 중동에서 미국과 중국의 힘의 균형과 한계를 재차 확인시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