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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법원 "회사 분할해도 계약 승계"… HD현대중공업, 1700만 달러 중재 최종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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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법원 "회사 분할해도 계약 승계"… HD현대중공업, 1700만 달러 중재 최종 승소

에네르기엔 "원 계약 당사자 아냐" 이의 제기했지만… 法 "한국법상 포괄적 승계 유효"
분할 신설 법인의 중재 권한 인정한 국제적 선례… 절차상 미비점 있어도 판정 효력 인정
영국 고등법원이 회사 분할 후에도 계약상 권리가 신설 법인에 승계된다고 판결하며 HD현대중공업이 1700만 달러 중재 소송에서 최종 승리했다. 이번 판결은 국제 중재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사진=HD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영국 고등법원이 회사 분할 후에도 계약상 권리가 신설 법인에 승계된다고 판결하며 HD현대중공업이 1700만 달러 중재 소송에서 최종 승리했다. 이번 판결은 국제 중재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사진=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이 발전 설비 제조업체 에네르기엔과 벌인 1700만 달러(약 231억 원) 규모의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판정에서 최종 승소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에네르기엔이 영국 중재법 제67조(관할권)와 제68조(중대한 절차상 하자)에 따라 제기한 중재판정 불복 소송을 기각했다.

27일(현지시각) 법률 전문 매체 ICLG와 법조계에 따르면 영국 고등법원 상사법원의 폭스턴 판사는 지난 26일 에네르기엔이 낸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기각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2019년 현대중공업의 회사 분할 뒤 새로 생긴 법인인 HD현대중공업이 기존 계약의 중재 권한을 유효하게 넘겨받았는지였다.

◇ 1700만 달러 배상 판정에 '관할권' 소송 맞불

분쟁은 2014년 6월 시작됐다. 당시 현대중공업(분할 전 법인)은 에네르기엔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납품할 급수 가열기(FWH)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는 영국 런던을 중재지로 하는 ICC 중재 조항이 있었다. 그 뒤 현대중공업은 2019년 4월 한국 상법에 따라 물적 분할했고, 해양 플랜트 사업 부문은 새로 생긴 법인인 현대중공업(지금의 HD현대중공업)이 넘겨받았다.
2020년 말 납품된 급수 가열기에서 결함이 드러나자 분쟁이 불거졌다. HD현대중공업은 2021년 10월 계약 위반을 들어 에네르기엔에 ICC 중재를 신청했다. ICC 중재판정부는 2024년 9월, 에네르기엔이 HD현대중공업에 1708만 1438달러(약 233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정했다.

그러자 에네르기엔은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에네르기엔 측은 "중재를 신청한 HD현대중공업은 새로 생긴 법인으로, 원 계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중재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중재 신청서에 회사 분할에 따른 권리 승계 사실 같은 법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빠져 ICC 규정을 어겼다고 맞섰다.

◇ 英 법원 "한국법상 포괄적 승계… 계약 권리 유효"

반면 HD현대중공업은 "한국 상법상 회사 분할은 자산과 부채뿐 아니라 계약상 권리와 중재할 권리까지 '포괄적 승계(universal succession)'하는 효력이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이 사실을 에네르기엔에 알렸고, 에네르기엔 또한 새로 생긴 법인을 계약 당사자로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HD현대중공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폭스턴 판사는 한국 상법 제530조 같은 관련 법규 전문가 증거를 살핀 뒤 "분할 계획서상 해양 플랜트 사업 부문의 모든 계약상 권리가 새 법인으로 이전된 점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한국법상 새로 생긴 법인은 해당 사업 부문에서 원래 법인과 같은 지위를 가지므로, HD현대중공업이 중재 합의를 자동으로 넘겨받았다고 봤다.

법원은 또 영국과 유럽연합(EU) 중재법 역시 회사의 본국법(이 사건에서는 한국법)에 따라 승계가 유효하면 다음 법인의 중재 청구 권한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설령 중재 신청서에 일부 잘못된 이름(misnomer)이 쓰였더라도,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실제 청구인이 법적 승계인인 HD현대중공업임을 뚜렷이 알 수 있다고 봤다. 이는 기업 구조조정으로 사라진 회사 이름으로 소송이 제기됐어도 진짜 청구인을 알아볼 수 있다면 그 절차를 유효하다고 본 영국 판례(SEB 트리그 홀딩 대 맨체스 사건)를 따른 것이다.

◇ 국제 중재서 중요 선례 남겨

에네르기엔이 문제 삼은 ICC 규정 위반 주장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중재 신청서는 당사자와 분쟁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만 충분히 담으면 되며, 모든 법적 근거를 자세히 쓰는 것이 관할권의 전제조건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법원은 청구인인 HD현대중공업이 공급 계약과 중재 권리를 합법적으로 넘겨받았고 중재 절차에도 큰 흠이 없었다며 에네르기엔의 주장을 모두 기각, 판정 취소 신청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한국법에 따라 회사를 분할할 때 사업을 넘겨받은 법인이 중재 권한까지 자동으로 승계한다는 점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또한 정당한 승계인이 명확하다면 절차에 다소 미비한 점이 있더라도 중재판정의 효력은 유지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소송에서 에네르기엔은 왓슨 팔리 앤 윌리엄스 법무법인과 에식스 코트 챔버스의 변호인단이 대리했으며, HD현대중공업은 프레스턴 턴불 법무법인과 쿼드런트 챔버스의 변호인단이 대리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