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이 트래픽·수익 앗아가자 언론사들, 소송·기술 차단으로 전면 대응
'공정 이용' 주장하는 AI와 지식재산권 보호 충돌…웹 개방성 기로에
'공정 이용' 주장하는 AI와 지식재산권 보호 충돌…웹 개방성 기로에

◇ 트래픽 끊는 AI…'공짜 점심'은 없다
문제의 발단은 챗GPT·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 챗봇이다. 이들 서비스는 웹에서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 질문에 간결한 답변을 직접 제공한다. 이 때문에 사용자들이 뉴스 웹사이트를 직접 방문할 필요가 크게 줄었다. 실제로 많은 언론사의 검색 트래픽은 이미 급감했고, 구글이 기존 검색보다 링크를 훨씬 적게 제공하는 'AI 모드'를 내놓으면서 타격은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 기업 클라우드플레어에 따르면 지난해 웹 수집 활동은 18%나 급증했다. 상황이 이렇자 언론사들은 더 지켜볼 수는 없다고 판단해 본격 대응에 나섰다. 소송을 제기하고, 콘텐츠 사용료를 요구하는 사용권 계약을 맺는가 하면, 이제는 아예 자사 사이트에서 AI 크롤러(데이터 수집 봇)를 완전히 차단하는 기술 조치를 시작했다.
미국 언론사 '디애틀랜틱'의 니컬러스 톰슨 최고경영자(CEO)는 "사이트를 읽는 것은 사람이어야지, 가치를 돌려주지 않는 봇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닷대시 메러디스의 닐 보겔 CEO 역시 "지적 재산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하면 아무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면서 "발행사에 보상하지 않으려는, 그가 '악의적 행위자'라고 부르는 이들을 차단하고자 클라우드플레어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닷대시 메러디스는 '피플', '서던 리빙' 같은 브랜드를 가졌으며, 오픈AI와 콘텐츠 사용권 계약을 맺었다.
◇ 데이터 접근 막는 '기술의 벽'
언론사들의 기술 대응도 구체화하고 있다. '디애틀랜틱'은 오픈AI와는 사용권 계약을 맺었지만, 다른 AI 기업들의 접근은 기술로 막을 계획이다. 클라우드플레어는 최근 AI 수집 프로그램에 '통행료 징수소(toll booth)' 노릇을 하는 새 기능을 도입해 언론사들이 AI 크롤러의 접근 허용 여부와 데이터 사용 방식을 직접 결정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AI 기업들은 이런 '무단출입 금지' 표지판을 무시한다. 과거 USA 투데이의 모회사 개닛 등은 크롤러에게 수집 가능 여부를 알리는 '로봇.txt' 파일에 의존해 봇을 막으려 했으나 AI 기업들이 이를 무시하는 봇을 개발해 데이터를 모아왔다.
무차별 수집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 토론 사이트 레딧은 지난달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을 고소했다. 앤트로픽이 수집을 멈추겠다고 밝힌 뒤에도 10만 번 넘게 사이트에 무단 접속했다는 것이다. DIY 기술 수리 사이트 아이픽스잇 역시 앤트로픽의 수집 프로그램이 24시간 동안 자사 서버에 100만 번이나 접속하자 해당 봇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아이픽스잇의 카일 윈스 CEO는 "허가 없이 콘텐츠를 가져가는 것을 넘어 우리 자원을 소모시키는 옳지 않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 '공정 이용'이냐 '무단 탈취'냐…법정 간 AI
언론사와 AI 기업의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월스트리트저널의 모회사 뉴스코프의 자회사 두 곳은 퍼플렉시티를 고소했다.
AI 기업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메타와 앤트로픽은 각각 다른 소송에서 일부 이기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당시 앤트로픽 소송의 판사는 특정 조건에서 AI 모델 훈련을 위한 저작물 수집은 '공정 이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닫힌 인터넷' 우려…"새 균형점 찾아야"
법과 기술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인터넷 생태계 전체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모양새다. '데이터 프로비넌스 이니셔티브'의 셰인 롱프레이 책임자는 "웹이 최고 입찰자에게 나뉘고 있다. 이는 시장 집중과 개방성에 매우 나쁜 일"이라며, 언론사들의 봉쇄 조치가 학문 연구나 보안 검색 같은 선한 뜻의 웹 수집까지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봉쇄 조치가 되레 시장 집중을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거대 AI 기업과 대형 언론사만이 사용권 계약을 맺고,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언론사나 스타트업은 이 경쟁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웹 아카이브 사이트 '인터넷 아카이브'의 브루스터 케일 창립자는 현재 처지를 두고 "주요 산업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다"라며 수집을 둘러싼 불분명한 기준과 소송전이 미국 AI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으로 법률 분쟁과 기술 차단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웹의 개방성, AI 기술의 발전, 언론사의 생존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복잡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콘텐츠 사용권 시장이 새로운 수익 모델로 확대될 수 있지만, 동시에 웹의 자유로운 정보 흐름이 심각하게 제한될 위험도 있다. AI와 미디어 산업 사이에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려는 사회 논의와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