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질병 없는 아기 340만 원에 선택’...머스크가 연 판도라의 상자

글로벌이코노믹

‘질병 없는 아기 340만 원에 선택’...머스크가 연 판도라의 상자

1200가지 질병 미리 차단하는 배아 선별 서비스, '러시안 룰렛' 수준 정확도 논란
자녀 선호 분위기 속에 실리콘밸리 부유층들 사이에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완벽한 아기'를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자녀 선호 분위기 속에 실리콘밸리 부유층들 사이에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완벽한 아기'를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실리콘밸리 부유층들 사이에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완벽한 아기'를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6(현지시각) 일론 머스크와 그의 파트너 시본 질리스 등이 배아 유전자 선별 서비스를 이용해 자녀를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소재 오키드 헬스는 배아 한 개당 2500달러(340만 원)1200여 가지 질병을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평균 2만 달러(2780만 원)이 드는 시험관아기시술(IVF) 비용에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다.

오키드 헬스 창립자인 노어 시디키(30)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녀만큼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운에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디키는 이미 16개의 배아를 만들었으며, 오키드 선별을 거친 배아로 4명의 자녀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35만 달러에서 400달러로...유전체 분석 비용 급락


유전체 분석 기술의 발전이 이런 서비스를 가능하게 했다. 2007년 첫 상업 유전체 분석 회사는 고객에게 35만 달러(48700만 원)를 받았지만, 현재는 400달러(56만 원) 미만으로 떨어졌다.

오키드 헬스는 배아에서 채취한 5개 세포만으로 30억개 염기쌍으로 이뤄진 전체 유전체를 분석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IVF 병원에서 실시하는 낭포성 섬유증이나 다운증후군 등 단일 유전자 질환 검사를 넘어서, 알츠하이머병, 조현병, 비만, 암 등 복잡한 질환의 위험도까지 예측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복합유전자 위험점수'라는 맞춤형 계산법을 활용해 수백에서 수천 개 유전자가 함께 작용하는 질병들의 발생 확률을 계산한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머스크의 파트너인 질리스가 오키드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머스크의 최소 14명 자녀 중 일부가 오키드를 통해 태어났다. 시디키는 구체적인 고객 정보에 대한 설명은 거부했다.

◇ 어머니 실명이 창업 동기...거대 자본 몰린다


시디키의 창업 동기는 개인적 경험에서 나왔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희귀 유전자 변이로 인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으면서, 시디키는 일부 사람들은 "유전자 특권"을 누리지만 어머니처럼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디키는 2012년 고등학교 재학 중 대학 진학 대신 창업을 장려하는 피터 틸의 10만 달러(13900만 원) 장학금을 받으며 사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초기 투자자로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암스트롱,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개인유전자 분석업체 23앤드미 창립자 앤 워치키 등이 참여했다.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시디키가 스탠포드에서 가르치고 있던 '생식기술의 최전선'이라는 수업에 대한 트윗을 본 후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피터 틸은 오키드 외에도 난자 냉동 로봇기술 스타트업 TMRW에 투자하고, 아시아 불임치료 서비스에 2억 달러(2800억 원)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동성애자인 틸도 최근 IVF와 대리모를 통해 4명의 자녀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오키드는 미국 내 100IVF 병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1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첫 번째 오키드 아기는 지난해 말 태어났다.

◇ 지능까지 예측하는 업체들 등장


오키드가 지능 장애는 선별하지만, 지능 예측은 하지 않는다고 밝힌 가운데, 다른 업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틸이 투자한 뉴클리어스와 헬리오스펙트 지노믹스 등은 지능 예측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머스크는 텍사스대학교 인구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며 뛰어난 지능을 가진 자녀를 얻고자 한다고 질리스가 머스크 전기 작가에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 과학계 "러시안 룰렛과 같다" 강력 비판


하지만 유전학 전문가들은 오키드의 핵심 기술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인다. 스탠포드대학교 스베틀라나 야첸코 병리학과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5개 세포만으로 정확한 유전자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DNA 증폭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야첸코 교수는 "특정 질병이 없거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본적으로 러시안 룰렛과 같다"고 비판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리오르 파흐터 컴퓨터생물학 교수는 오키드의 서비스를 "도덕성이 없는 헛소리"라고 표현하며 "수치 점수로 유전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특정 계층에게 실제보다 더 많은 통제력이 있다는 착각을 준다"고 말했다.

미국 의학유전학·유전체학회는 배아의 복합유전자 위험 검사에 대해 "입증되지 않은 이익"이라며 "의사들이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복합유전자 위험점수의 또 다른 문제는 비유럽계 인종에 대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일부 연구자들에 따르면 비유럽계 조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예측 정확도가 절반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 현재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 출신, 특히 50만 명의 유전자 데이터를 포함하는 영국 UK 바이오뱅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남가주대학교 패트릭 털리 통계유전학 연구자는 "위험 점수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데이터가 현재 성인이고 종종 고령인 사람들의 유전학에 의존한다""현재 70대인 사람들이 직면한 위험이 오늘날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얼마나 적용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세플라스틱이나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 같은 현재 배아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들이 과거와 다르다""세상이 다른 곳일 때 복합유전자 점수가 미래에 얼마나 잘 예측할지 전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3만 달러 들여 '완벽한 아기' 선택한 부부


실제 이용 사례도 나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임원 로샨 조지와 줄리 강 부부는 지난해 오키드 서비스를 이용해 12개 배아를 검사했다. 부부 모두 선천성 청력 상실을 일으키는 희귀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3만 달러(4180만 원)를 들여 진행한 검사 결과, 6개 배아가 생존 가능했고 이 중 2개는 청력 상실 유전자를 보유했다. 부부는 최종적으로 복합유전자 점수를 '결정 요인'으로 삼아 배아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부부의 딸 아스트라 메리디안은 올해 3월 태어났으며 현재까지 청력에 문제가 없다.

미국에서는 현재 유전자 예측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IVF 접근성 확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캘리포니아주는 다음달부터 대형 보험사들이 IVF 등 불임치료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