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메이커 절반 은퇴 예정, MZ세대 "맥주가 낫다" 외면에 수백 년 전통 붕괴

더 프리 프레스가 지난 29일(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와인메이커의 절반이 앞으로 10년 안에 은퇴할 예정이지만 이들을 이을 젊은이들이 충분하지 않다.
8대에 걸쳐 보르도 포도주 양조장 카스텔노(Chateau Castelneau)를 운영해온 로익 드 로크푀유(73)는 자녀들에게 가업 승계를 제안했지만 "너무 복잡하고 돈이 안 된다"며 거절당했다. 결국, 그는 36헥타르 포도원 중 30헥타르를 파괴했다. 드 로크푀유는 "모든 것이 끝났다"며 안경 뒤로 눈물을 흘렸다고 보도됐다.
1797년 프랑스 상인 알프레드 플리노이가 프랑스 혁명 때 크게 망가진 성을 사들인 이후 8대째 이어온 가문이다. 해마다 20만 병 이상을 생산하는 대단한 사업이었지만, 이제 그 전통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프랑스 와인 공급이 심하게 넘쳐나면서 정부는 포도원을 뿌리째 뽑는 농부들에게 보상금을 준다. 프랑스 독립 와인메이커 협회에 따르면 프랑스 최대 와인 재배 지역인 보르도 전역에서 수천 개의 소규모 포도주 농장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프랑스 가족들은 포도원 6개 중 1개를 폐쇄했으며, 그 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뉴욕 모렐 앤 컴퍼니의 수석 와인 수입업자인 팀 크레이크스는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 농업이다"라며 보르도 와인 산업의 현실을 말했다.
보르도 포도원의 3분의 2는 드 로크푀유 같은 가족 경영으로, 4대, 5대, 9대째 포도주 양조장이 병당 5유로에서 45유로 사이의 메를로와 카베르네를 생산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술을 적게 마시고, 마실 때도 보르도의 강하고 떫은맛 나는 레드 와인보다 맥주, 알코올 함유 탄산수(하드 셀처), 가볍고 톡 쏘는 와인을 더 좋아한다.
기후변화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기온이 오르면서 포도가 빨리 익어 와인의 섬세한 화학 성질이 떨어진다. 크레이크스는 "그 와인은 처음 5-6년간 맛이 좋을 수 있지만, 훌륭한 빈티지가 알려진 50년, 60년, 100년, 200년 동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젊은층 음주 패턴 바뀌고 관세 압박도
전 세계 와인 소비량은 지난해 1961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이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지출을 줄이고 있다. 크레이크스는 “와인은 오래 숙성할수록 맛있어지는데, 자신이 늙어 죽기 전에 그 와인을 마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둘째,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라벨보다 와인을 탐색하고 배우는 데 관심이 적다. 와인메이커들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격식 있는 와인 대신 간단한 타파스와 해피아워, 핑거 푸드를 더 좋아한다”고 걱정스럽게 말한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15% 관세가 더 부담을 주고 있다. 프랑스는 와인의 19%를 미국 시장에 내다파는 만큼 가격이 오르면 판매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샤토 뒤 타이양의 4대째 소유주인 아르멜 크루즈 팔시(61)는 "관세가 예상했던 30%보다는 낮지만 15%도 여전히 부담스럽다"며 "우리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4대째 와인메이커인 토마스 르 그릭스 드 라 살은 젊은이들이 업계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떠나는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젊은이들은 '파리에서 금융 분야에서 쉽게 일하며 한 달에 1만 5000유로(약 2400만 원)을 벌 수 있는데, 한 달에 2000유로(약 320만 원)을 모으려고 개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르 타이양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타티아나 팔시(28)는 와인메이커 자녀 중 가업을 잇는 드문 경우다. 2020년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와 닫힌 국경 때문에 집에 머물게 됐다. 그는 "나는 혼자인 것 같다"며 또래 중 가족 포도원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두 자매와 10명의 사촌은 모두 런던, 파리, 보르도 시에서 금융, 패션, 접객업에서 일한다. 타티아나는 젊은층을 겨냥한 ‘라 로즈 뒤 타이양’(La Rose du Taillan) 같은 새로운 와인 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병당 10-12유로(약 1만 6000~1만 9000원)으로 빨강, 하양, 로제로 나오며, 기존의 격식 있는 성과 세리프 라벨 대신 양식화된 꽃과 펑키한 글꼴을 쓴다.
한편 헤지펀드, 스포츠 스타, 억만장자 등은 어려움을 겪는 포도주 농장 소유주를 사들이려고 나서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포도원을 와인 생산지가 아닌 휴양지나 두 번째 집으로 쓸 것으로 예상된다. 스위스 억만장자 재키 로렌제티 같은 투자자는 가족 와인메이커를 유지하며 어려운 운영에 돈을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수백 년 된 전통의 끝을 뜻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