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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업 파산 717건, 15년 만에 최고…트럼프 관세에 제조업 7만 명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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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업 파산 717건, 15년 만에 최고…트럼프 관세에 제조업 7만 명 해고

관세정책 역풍에 산업재·소매업 줄도산…대형 파산 17건은 코로나 이후 최다
소비자심리 28% 급락에 필수품만 구매…AI·부유층 주도 성장에 양극화 심화
미국에서 올해 기업 파산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제조업과 소매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미국에서 최소 717개 기업이 파산을 신청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에서 올해 기업 파산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제조업과 소매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미국에서 최소 717개 기업이 파산을 신청했다. 사진=로이터
미국에서 올해 기업 파산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제조업과 소매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미국에서 최소 717개 기업이 파산을 신청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27(현지시각) 보도했다.

산업재 부문 파산 급증…제조업 일자리 7만 개 소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4% 증가한 수치로,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제조·건설·운송 관련 산업재 부문 파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 부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추진한다던 관세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연방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로 끝난 1년 동안 제조업 부문에서만 7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패션·가구 등 임의소비재를 다루는 기업들이 두 번째로 많은 파산 신청을 했다. 이 부문은 통상 파산 1위를 차지하는데, 이번 순위 변동은 인플레이션에 지친 소비자들이 필수품 구매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신호다. 예일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는 "이들 기업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직면한 구매력 위기를 절감하고 있다""관세와 고금리 비용을 상쇄하려 최선을 다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자산 10억 달러(14450억 원) 이상 기업의 '대형 파산'17건 발생했다. 경제 컨설팅업체 코너스톤리서치에 따르면 이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기 기준 최고치다. 가구업체 앳홈과 패스트패션 브랜드 포에버21 등 임의소비재 업체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매트 오스본 코너스톤 연구원은 "고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소비 수요를 억눌렀고 자본 조달도 어렵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태양광·항공까지 연쇄 타격…정책 변동이 결정타


산업재 부문에서는 제조·운송업체와 재생에너지 기업의 파산이 눈에 띈다. 루이지애나의 주택용 태양광업체 포지젠은 지난달 25일 텍사스주 연방파산법원에 챕터11 파산보호를 신청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태양광 패널을 저렴하게 만들던 세금 혜택을 축소하고 태양광 모듈·인버터·구조용 철강 등 수입 자재에 가파른 관세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미시간주립대 제이슨 밀러 경영학 교수의 연방정부 자료 분석에 따르면, 수입 태양광 전지와 패널에 대한 실효 관세율은 지난 5월 이후 약 20%로 급등했다. 이전에는 5% 미만이었다. 밀러 교수는 "미국 태양광 수입업체들이 가장 일반적인 패널 유형에 대해 올해 하반기 한 달에 7000만 달러(1010억 원) 가까운 관세를 냈다""특히 소규모 수입업체들의 현금 흐름에 큰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다.

항공 부문에서는 초저가 항공사 스피릿에어라인이 지난 8월 챕터11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1년도 안 돼 두 번째 파산이다. 플로리다의 전용기업체 베리젯도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KPMG의 미건 마틴-쇤버거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이 부문 파산은 수입 원자재에 대한 관세 영향과 함께 운송·화물 업계 전반의 통폐합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소비 위축에 소매업 연쇄 도산…中 의존도가 독


미시간대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11월 전년 동기 대비 약 28% 급락했다. 많은 소비자가 필수품이 아닌 지출을 꺼리면서 소매업체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액세서리·공예품·가구처럼 소비자들이 식료품·공과금·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포기하는 품목을 파는 업체들이다. 한 추산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관세 때문에 연간 1800달러(260만 원)를 추가로 지출하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성수기 주문 기간에 관세를 자주 바꾸면서 일부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수입에 의존하는 많은 업체가 낮은 관세율 국가로 제조와 자재를 급히 옮기느라 예산을 초과 지출했다. 일부는 재고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관세를 낼 현금이 부족할까봐 주문을 줄였다.

10대 액세서리 전문점 클레어스는 지난 8월 챕터11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수백 개 매장 폐쇄에 나섰다. 귀걸이·머리띠·열쇠고리 등 제품 대부분을 중국·캄보디아·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던 이 업체는 관세 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지난 9월 한 사모펀드가 북미 사업부를 14000만 달러(2020억 원)에 인수하며 미국·캐나다 매장의 약 80%950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양극화 심화…AI 투자가 성장 견인


마틴-쇠크버거 이코노미스트는 "파산 급증은 경제의 모순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지난 23일 발표된 정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지난 7~9월 연율 4.3%2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런 성장이 부유층 소비자와 인공지능 관련 기업 지출에 의해 주도된다고 경고한다.

마틴-쇠크버거는 "서류상으론 강해 보이는 경제가 모든 산업에 반드시 반영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부 관세 면제 조치를 취했지만, 주로 인공지능과 연결된 기술 부문에 혜택이 집중됐고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은 산업은 소외됐다는 지적이다.

월가에서는 2026년에도 관세정책과 소비 양극화가 지속하면서 중소 제조업체와 수입 의존 소매업체의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인공지능 투자와 기술 부문 중심의 성장세는 유지될 전망이다.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여부가 취약 산업의 생존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