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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조선 쇄국'의 역설…K-조선, 반사이익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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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조선 쇄국'의 역설…K-조선, 반사이익 현실화

트럼프, LNG 수출에 '미국산 선박' 족쇄…현실성 없는 정책에 비판 고조
한화오션, 50년 만의 美 LNG선 건조 '잭팟'…추가 수주 기대감 ↑
미국의 '자국산 LNG선' 의무화 정책이 공급망 우려를 낳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 속에서 세계 1위인 한국 조선업계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자국산 LNG선' 의무화 정책이 공급망 우려를 낳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 속에서 세계 1위인 한국 조선업계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로이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수출 확대를 주요 성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운송 선박은 자국산을 고집하는 정책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의 조선업 역량이 사실상 붕괴된 현실을 외면한 이 정책으로 인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압도적 1위인 한국 조선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화오션은 약 50년 만에 미국 수출용 LNG선을 건조하며 기회를 현실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한국과 맺은 무역 협정으로 대규모 미국산 에너지 구매 약속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따로 내놓은 '미국산 선박 이용 의무화' 정책이 이런 장밋빛 전망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정책은 2028년 4월부터 미국산 LNG 수출 물량의 1%를 미국 국적선으로 운송하고, 2029년부터는 1%를 미국에서 만든 선박으로 운송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비율은 해마다 1%씩 올려, 2047년에는 총수출 물량의 15%를 반드시 미국산 선박으로 날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 강하게 의심한다. 에너지 시장 분석 전문 기업 포텐 앤 파트너스의 제이슨 피어 총괄(글로벌 비즈니스 인텔리전스)은 "미국의 LNG와 원유를 운송하려고 미국 건조 선박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 50년간 멈춘 美 상업용 선박…"정책 실현 불가능"


미국의 조선업 현실은 처참하다. 현재 세계에서 운항하는 LNG 운반선 682척 가운데 미국이 만든 선박은 1977년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건조한 'LNG 아쿠아리우스'호 한 척뿐이다. 실제 미국 국적으로 운항하는 '아메리칸 에너지'호 역시 프랑스가 만들었다. 미국 조선소들은 수십 년 동안 군함과 내수용(존스법 적용) 선박 건조에만 힘써왔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331척의 새 선박이 발주될 예정이지만, 이 가운데 미국산은 단 한 척뿐이다. 포텐 앤 파트너스는 USTR 지침을 따르려면 2047년까지 미국산 LNG 운반선이 최소 45척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피어 총괄은 "세계적으로는 수출 확대를 뒷받침할 선박을 많이 만들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선박을 미국 조선소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라며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상업용 원양 선박을 만든 적이 없고, 그동안 많은 조선 능력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파이프 배관공, 목수, 용접공 같은 기능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정해진 기한 안에 이 모든 것을 해내기는 큰 도전"이라고 덧붙였다.

비용 문제도 크다. LNG 운반선 한 척을 만드는 비용은 보통 2억6000만 달러(약 3600억 원) 수준이지만, 미국에서 만들면 이보다 두 배에서 네 배 더 비쌀 것이라고 업계는 본다.

◇ 美 정책 딜레마가 韓 조선업엔 기회...한화, 50년 만에 건조


이런 가운데 한화오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오션의 미국 계열사인 한화 필리 조선소는 거의 50년 만에 미국에서 발주한 수출 시장용 LNG 운반선을 만들고 있다. 두 번째 선박을 추가로 수주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 조선 시장에서 한국의 압도적인 위상을 보여준다. 국제 해운 단체 빔코(BIMCO)에 따르면, 세계 LNG 선단의 78%는 한국산이고 일본(13%)과 중국(7%)이 그 뒤를 잇는다. 특히 미국은 세계 LNG와 원유 수송 수요의 각각 27.5%와 9.5%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국인데도, 운송을 주로 한국산 LNG선에 의존한다. 새 발주 시장에서도 한국은 전체 수주 잔량의 64%를 차지하며 시장을 이끌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면제 조항'이나 '선박 국적 변경' 같은 예외 규정을 쓸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위한 조선 및 항만 인프라 번영·안보 법안(SHIPS for America Act)' 등을 통해 한때 외국산 선박의 국적 변경을 허용하더라도, LNG 수출 전용선에는 제한이 따를 수 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면제 조항(웨이버)'을 써서, 부품 비용을 25% 더 내는 대신 외국산 선박을 쓰는 방안이 거론된다.

리포 오일 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리포 대표는 행정부가 면제 조항을 쓸 수밖에 없으리라 내다봤다. 그는 "선박이 부족해 LNG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미국 석유 생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행정부가 생산을 멈추는 일을 바라지 않을 테니, 시장이 수출 차질을 걱정해 가격이 내리면 면제 조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루이스 솔라 전 연방해사위원회 위원도 "상식적인 유연성이나 단계적 접근 없이는 계산이 맞지 않는다"며 "동맹국들이 미국산 에너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우리 스스로 LNG 수출길을 막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산 선박' 원칙은 미국 내 조선업 기반 붕괴와 전문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미국의 정책 딜레마가 미국 LNG 수출 길을 막고 동맹국의 에너지 조달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한국 조선업계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