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보다 값싸고 빠르다…‘AI 자립 선언’한 중국, 미국 제재에도 세계 무대 흔든다”

올해 초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서구 대비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대형 AI 모델을 공개해 세계를 놀라게 한 데 이어, Z.ai는 최근 GLM-4.5라는 생산용 오픈소스 AI 모델을 선보였다. 이 모델은 딥시크 제품 가격의 13% 수준에 불과하지만, 코딩과 추론, 도구 활용 능력에서 서구 기업의 모델과 맞먹거나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엔비디아가 중국 판매를 재허가한 H20 GPU 8개라는 제한된 하드웨어 자원만으로도 딥시크 대비 절반 정도의 장비로 더 좋은 결과를 냈다는 점이 돋보인다.
WSJ는 지난 1월, 미국 상무부가 Z.ai 전신인 Zhipu와 그 계열사를 "중국 군대 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엔티티리스트(Entity List)’에 올려, 세계적으로 성능이 뛰어난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반도체를 미국 기업이 팔 수 없게 했다. ‘엔티티리스트’란 미국 정부가 ‘이 회사와 거래하지 말라’고 지정하는 특별 명단으로, 중국 군대의 기술 발전에 힘을 보탰다며, Zhipu와 그 계열사에 대한 부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 대형 투자와 국가 자본 15억 달러(약 2조 원)의 지원에 힘입어 고성능 모델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사례가 ‘예외’가 아니라 중국 AI 전략의 성공 사례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지난달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에서 리창 중국 총리가 AI 기반 인프라 외교와 오픈소스 생태계 확장, 저비용 모델과 하드웨어 공급을 핵심으로 하는 ‘AI 플러스’ 국가 계획을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이 계획과 중국 내 GPU 생산 능력 확대가 최근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로 인한 공백을 빠르게 메우고 있다고 평가한다.
현재 중국은 1500개가 넘는 AI 모델을 보유한 상태이며, 절반 이상이 오픈소스 모델이다. 이러한 모델 가운데 상당수가 서구 AI의 수학 및 코딩 평가 기준과 맞먹거나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화웨이가 개발한 GPU도 경쟁력 있는 첨단 반도체 공급원으로 급부상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중국의 AI·하드웨어 수출이 글로벌 신흥국으로 널리 퍼지면서 미국 허가 없이도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내에서는 기존의 AI 칩 수출 제한 정책에서 벗어나, AI와 첨단 반도체의 해외 공급 확대와 국내 규제 완화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AI 행동 계획 발표에서 “미국 경쟁력을 높이려면 철저한 국내 생산 확대와 국제 수출이 필수”라고 밝혔다. WSJ는 “엔비디아 칩 한 개가 해외에 게시될수록 미국 AI 소프트웨어와 가치관이 세계에 퍼지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AI 하드웨어와 모델 수출 경쟁을 강화하고 엔비디아가 점유율 감소세를 보이면서 미국과 중국 간 AI 주도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많다. Z.ai 사례는 중국 정부와 민간 자본, 기술력이 모여 만드는 ‘톱다운’ 전략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AI 생태계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증거로 꼽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