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인구 역전, 일본 물가 급등…곳곳서 나타나는 '이상 신호'
빈곤·기업지배구조·미국 패권·EU 미래, 4대 전환점 주목
빈곤·기업지배구조·미국 패권·EU 미래, 4대 전환점 주목

최근 발표된 여러 기업 실적과 거시경제 데이터는 이러한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2024년 미국의 출생아 수는 약 360만 명으로 EU와 거의 같아졌다. 이는 미국·유럽·아프리카 등 주요 지역의 인구 변화가 세계 경제의 지속 가능성, 노동력 구조, 사회 복지비 부담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EU 인구의 절반에 못 미치는 나이지리아에서는 지난해 약 700만 명이 태어났다. 일본에서는 최근 몇 달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수십 년 만에 미국을 앞질렀다. 이는 일본의 디플레이션 체질 변화와 함께 장기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국제 금융 시스템 전체에 중대한 파급효과를 낳을 전망이다.
마이크 오설리반 칼럼니스트는 홍콩 민주주의의 붕괴를 세계화 퇴조의 시작점으로 지목하며,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난 40년간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약 40년간 세계화 시스템의 기둥이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은 정치적 압박으로 잠식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사 쿡 연준 이사의 해임을 시도한 것은 연준을 자신의 경제정책 엔진으로 삼으려는 뜻을 명확히 보여준다.
◇ 흔들리는 동맹과 국제기구
민주주의의 위기 또한 심각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민주주의 지수' 2024년 세계 평균 점수는 지난 20년 이래 가장 낮았다.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의 굳건한 동맹이라는 전제 역시 흔들리고 있다. 덴마크 정부가 자치령 그린란드에서 벌어진 미국인들의 비밀공작 의혹과 관련해 자국 주재 미국 대리대사를 부른 사건은 동맹관계의 신뢰가 얼마나 약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유엔·국제통화기금(IMF)·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는 주요국에 무시당하며 영향력을 빠르게 잃고 있으며, 인구 대국 중심으로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 세계 질서 재편할 4가지 핵심 조류
이처럼 기존 질서가 허물어지는 '붕괴의 법칙(Unravelling Rule)'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앞으로 40년의 세계를 규정할 네 가지 핵심 조류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빈곤 감소의 한계와 새로운 불안정의 도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화는 10억 명 이상을 빈곤에서 구했지만, 최근 주요국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서면서 이 성과가 뒤집힐 위험에 처했다. 경제 불안이 선진국을 덮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실제로 영국·프랑스 등에서는 IMF의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영국의 극심한 지역 격차와 미국의 심화된 소득 불평등 역시 주요 경제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둘째, 기업 지배구조와 법의 지배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국제 비즈니스에 통용되는 규칙이 있었지만 이제는 분산형 금융(암호자산 등)이 부상하고, 미국에서는 '거래의 기술'을 앞세운 정치가 등장했으며, 중국은 지정학적 뜻을 담은 디지털 거래 관행을 확장하고 있다. 세계 공통의 규범이 각 지역과 국가의 규범으로 대체되면서 기업들은 계약의 엄밀성과 사업관계 관리에 훨씬 더 신중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셋째, 미국 다국적 기업의 세계 경제 지배력 약화다. 과거 'B-52 폭격기'에 비유될 만큼 막강했던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유럽 주요 증시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위세는 여전하지만 기술 자급자족에 나선 중국 시장은 문을 닫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해외 사업에 부수적인 피해를 주며, 아프리카와 인도 등에서는 현지 맞춤형 수요가 커지고 있다.
넷째, 유럽연합(EU)의 '하드 파워' 전환이다. 지난 40년간 EU는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 조약 등으로 대표되는 '소프트 파워'의 성공 모델이었다. 하지만 거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EU는 이제 '하드 파워'를 갖춘 강경한 주체로 변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헝가리·세르비아처럼 EU의 가치를 상습적으로 어기는 회원국을 통제하고, 러시아·중국·이란의 파괴 공작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며, 유럽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서사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세계 질서의 균열은 일본에도 직접적인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CPI와 장기 금리 상승이 기업의 투자와 소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가운데 세계 공급망 재편과 보호주의 회귀는 수출 중심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국제사회의 다자 협력이 한계를 드러내고 각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흐름 속에서 일본 또한 새로운 외교·경제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