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 "대통령 권한 남용" 판결…백악관 "패소 시 경제 파멸"
연방대법원, 연내 판결 가능성…기업들, 환급 청구권 거래 등 혼란 가중
연방대법원, 연내 판결 가능성…기업들, 환급 청구권 거래 등 혼란 가중

두 곳의 연방 하급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거의 모든 주요 교역 상대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위법 행위라고 판결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주 연방대법원에 상고하며 판결을 신속히 뒤집어 달라고 요청했다.
◇ 사상 초유의 1조 달러 환급 위기…백악관 "파멸적 결과"
미국 재무부의 스콧 베선트 장관은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선언문에서 "만약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확정하면 정부가 수입업체에 환급해야 할 금액이 7500억 달러(약 1040조 원)에서 최대 1조 달러(약 1386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금액은 지난 8월 24일까지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징수한 관세 720억 달러와 내년 6월까지 거둘 것으로 예상하는 세수를 포함한다.
베선트 장관은 "관세 정책을 되돌리는 것은 상당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행정부가 이례적으로 신속 판결을 요청한 것은 패소 때 환급해야 할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D. 존 사우어 법무차관 역시 대법원에 제출한 청원서에서 "이 사건의 중대성은 이보다 더 높을 수 없다"며 "관세가 있으면 우리는 부국, 없으면 우리는 빈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빌려 "미국이 수조 달러를 갚아야 한다면, 그런 잘못된 결정이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 미국은 강함에서 실패로 전락할 수 있으며 그 경제적 결과는 파멸적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베선트 장관은 NBC 방송에 출연해 "대법원 판결에 따라 환급이 필요하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이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들, 환급 청구권 거래 등 혼란 커져
연방대법원이 언제 행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법무법인 킹 앤 스폴딩의 라이언 마제러스 파트너 변호사는 "행정부가 10월 중순까지 기다리지 않고 상고를 서두른 점을 고려하면 연말 안에 대법원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관세 위법 판결을 내리면 사상 초유의 환급 절차가 시작되는데, 개별 수입업체가 직접 신청해야 할 가능성이 커 통관 기록, 세금 납부 영수증 등 서류 준비 부담이 클 전망이다. 이에 따른 행정 지연과 추가 법적 분쟁 우려도 제기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기업들에 수입 관련 서류를 꼼꼼히 챙겨 환급 청구에 대비하라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브라운스타인 하얏트 파버 슈렉은 최근 고객 알림에서 "수입 내역을 문서화하고 필요한 서류를 신속하게 제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물류업체 C.H. 로빈슨의 마이크 쇼트 사장은 "만약 통관사들이 환급 신청을 대행해야 한다면 업무량이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며 현장의 혼란을 내다봤다.
한편 뉴욕타임스(NYT)의 경제 뉴스레터 '딜북'은 일부 수입업체들이 잠재적 환급 권리를 펀드 등 제3자 회사에 헐값으로 매각하라는 제안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를 무효화할 것이라는 데 돈을 거는 투기 세력이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통상 정책을 둘러싼 정치 공방으로도 번지고 있다. 행정부는 "관세가 없으면 미국이 망한다"는 논리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반면, 야당과 법조계는 대통령의 권한 남용과 무역 질서 파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