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91조 원 투자에도 '기술 유출·대만 반발' 이중고…한국 기업 타격 불가피

WSJ는 이날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반도체 기업들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만큼 미국 내에서도 같은 양을 생산하지 않으면 관세를 매긴다는 방침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이 방침을 어길 경우 최대 100%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기술전문매체 WCCF테크가 같은 날 전했다.
'1:1 생산 비율' 제한으로 완전한 미국 제조업 회귀 목표
새 방침의 핵심은 반도체 기업들이 고객사가 해외 생산업체한테서 수입하는 반도체와 같은 수량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WSJ는 "1:1 비율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관세를 내야 한다"고 이 방침에 정통한 소식통들 말을 인용해 전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공급망의 모든 요소를 미국으로 옮기려는 뜻으로 보인다. TSMC는 현재 고급 패키징 서비스 등 마지막 제품 완성을 위해 해외 조립라인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무리 정교한 제품이라도 100% '메이드 인 USA' 제품을 목표로 한다.
다만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국내 시설이 준비될 때까지 해외 공장에서 칩을 가져올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준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 방침을 따르지 못할 경우 큰 관세를 매긴다.
TSMC 등 세계 반도체 업체들 직격탄 피할 수 없어
이번 제한은 특히 TSMC에 큰 손실이 될 전망이다. TSMC의 미국과 대만 생산 시설 간 공정 기술과 생산량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TSMC는 애리조나에 650억 달러(약 91조 6500억 원)를 들여 3개의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대만 본사 생산능력에는 크게 못 미친다.
뉴스위크는 올해 1월 29일 "TSMC의 북미 고객들이 전체 순매출의 70%를 차지한다"며 "관세는 TSMC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만은 전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하며, 이들 칩은 애플과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에게 꼭 필요하다.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텍사스 오스틴 공장과 평택·화성 공장 간 생산 비율을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기술 유출 걱정과 대만 반발 속 방침 실효성 의문
TSMC는 미국 투자 확대 과정에서 이중 갈등에 빠져 있다. 대만 현지에서는 TSMC가 미국 파운드리로 바뀌고 있다는 걱정이 퍼졌다. 핵심 연구개발은 여전히 대만에 남아있지만, 트럼프 방침 때문에 대만과 미국이 같은 공정 기술을 생산하게 되면 '기술 이전'의 한 단계가 될 수 있다.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올해 2월 2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대만산 칩에 100% 관세를 매겨도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전 세계 관세 전쟁을 일으켜 미국인들 비용 부담을 늘리고 미국 기술 기업들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보통 3~4년이 걸리며, TSMC의 애리조나 공장도 인력 부족으로 늦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 관세를 매겨도 미국 내 생산 능력이 충분히 갖춰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