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리 지지로 급물살...헬름스-버튼법 모델로 푸틴 보복 억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스티븐 레이드메이커 코빙턴앤벌링 로펌 수석 변호사의 기고문을 통해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레이드메이커는 1996년 헬름스-버튼법 제정 당시 하원 외교위원회 수석 법률고문을 지냈다.
독일 지지로 장애물 제거...G7 공동 행동 모색
서방은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시작한 뒤 동결한 러시아 국가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미 의회는 지난해 미국 내 보유 중인 약 50억 달러(약 7조 원) 러시아 자산 몰수 권한을 승인했으나,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모두 훨씬 많은 자산을 보유한 유럽이 동참하기를 기다리며 이 권한을 쓰지 않았다.
최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 구상을 지지하면서 오랜 장애물이 사라졌다. 유럽 지도자들은 러시아 자금을 우크라이나에 '대출'하는 방식으로 바꾸되, 러시아가 전쟁 피해 배상금을 내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가 갚지 않아도 되는 방안을 중심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주요 7개국(G7)이 공동 행동을 통해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에 주자고 촉구했다.
푸틴 보복 위협...이미 500억 달러 몰수한 것으로 추정
크렘린궁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서방의 자산 몰수 조치에 대해 "반드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페스코프는 수년간 러시아가 자국 자산 몰수에 맞서 러시아 내 서방 투자를 압류하겠다고 위협해왔다. 2023년에는 크렘린이 이미 서방 투자 대상 목록을 만들었다고 밝혔으며, 지난해 푸틴은 미국 민간 투자에 맞서 보복 몰수를 승인하는 법령을 냈다.
러시아 국가 자산 몰수는 우크라이나에 입힌 피해를 배상하려는 것이지만, 서방 민간 투자자 자산을 빼앗는 것은 러시아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고 서방 정부 행동에 책임도 없는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인질 잡기는 러시아가 오래 써온 수법이다.
러시아는 지난 3년간 이미 약 500억 달러(약 70조 원) 규모의 서방 투자를 몰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서방 투자자들은 직접 몰수를 피하려고 투자 자산을 러시아 쪽에 푼돈으로 넘겼으나, 정치 상황이 바뀌면 되찾을 수 있도록 환매 조항을 넣었다. 러시아는 현재 이런 환매 조항을 무효로 만드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는 사실상 서방 투자자들의 값진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일부 몰수 자산은 신흥 재벌과 크렘린 측근들에게 넘어가 푸틴의 정치 지지 기반을 다지고 정권 수익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이 모든 몰수는 국제법이 요구하는 공정한 보상 없이 이뤄졌다.
쿠바 사례 헬름스-버튼법...3배 손해배상 소송권 부여
레이드메이커는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쿠바 혁명 뒤 미국 투자 자산을 체계적으로 압류한 사례를 제시했다. 1990년대 소련 보조금이 끊긴 뒤 카스트로는 몰수한 재산을 유럽과 캐나다의 새 투자자들에게 팔아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
미 의회는 1996년 헬름스-버튼법을 만들어 대응했다. 이 법은 불법으로 몰수된 재산의 정당한 주인들이 그 재산을 일부러 쓰거나 이익을 얻는 새 투자자들과 수혜자들을 상대로 '불법 재산 거래' 혐의로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원고는 재산 가치의 3배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 법의 목표는 불법 몰수된 미국 재산 거래를 강력히 막고 재산을 빼앗긴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레이드메이커는 서방이 자국 투자자들에게 헬름스-버튼식 구제책을 준다면 푸틴이 서방 투자를 몰수하려는 유인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러시아 신흥 재벌, 중국 기업가 등 잠재 투자자들은 3배 손해배상 판결 위험을 떠안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이는 몰수 재산 시장을 줄여 푸틴이 만들 수 있는 수익을 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방 투자자들이 법원 관할권을 확보하는 경우 법정 밖 합의나 손해배상 판결을 통해 거래자들한테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래 헬름스-버튼법은 거래 대상이 종종 자국민이었던 유럽과 캐나다에서 비난받았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에서는 미국, 유럽, 캐나다 투자자들이 모두 불법 거래 피해자라는 점에서, 레이드메이커는 이들 나라 정부가 자국 투자자 재산을 지키려고 러시아를 상대로 자체 헬름스-버튼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