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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재정 위험 부각, 국채 위상 흔들리자 회사채 '반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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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재정 위험 부각, 국채 위상 흔들리자 회사채 '반사이익'

국채-회사채 금리 격차 30년 만에 최저…'국가보다 기업이 안전' 인식 확산
월가, 국채 대신 '금리 스와프' 새 기준 삼아…'신흥국형' 위험 구조 닮아가는 미국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건물. 미국 정부의 재정 위험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국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 자금이 국채보다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우량 회사채로 몰리면서 국채와 회사채 간 금리 격차가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좁혀졌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건물. 미국 정부의 재정 위험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국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 자금이 국채보다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우량 회사채로 몰리면서 국채와 회사채 간 금리 격차가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좁혀졌다. 사진=로이터

미국 재정 건전성을 향한 시장의 의구심이 세계 금융의 근간인 미 국채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국채의 위험이 오히려 우량 회사채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부양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투자자들이 더 이상 국채를 무위험 자산으로 보지 않고 정부의 불확실성을 기업의 부도 위험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우량 기업이 국가보다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신흥국 시장에서나 관찰되던 자금 흐름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 기능 장애가 만든 '착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투자 등급 회사채와 국채 사이 수익률 격차인 신용 격차는 최근 0.73%포인트 수준까지 좁혀졌다. 199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통상 기업의 채무 상환 능력을 강하게 신뢰한다는 긍정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부 투자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우량 기업이 미국 정부보다 지급 능력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이례적인 일까지 벌어진다.

'안전자산' 국채의 배신…정부 위험이 키운 착시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TD 증권 USA의 전략가 한스 미켈센은 이러한 격차 축소가 기업의 기초 경제 여건 개선 효과라기보다는 미국 정부의 기능 장애와 국채 자체의 위험 증가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 연방정부의 폐쇄(셧다운) 가능성, 정치 양극화,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조짐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통 안전자산의 신뢰도를 훼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당 간 대립이 극심한 가운데 2027년으로 예상하는 차기 부채 한도 협상 파행 가능성은 국채의 신뢰도를 뿌리째 위협하는 요인이다.
미켈센은 "일부 측면에서 미국 정부가 신흥 시장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진단하며, 이런 흐름이 역으로 견실한 기업의 회사채 수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상 신흥국에서 나타나던 '기업 신용도가 국가 신용도보다 높은' 현상이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드문 사례다.

흔들리는 기준…월가, '국채 대안' 찾기 분주


국채의 위상 약화는 월스트리트의 오랜 투자 관행에도 변화를 몰고 온다. JP모건 체이스 앤 코에 따르면, 일부 투자자들은 정치와 재정 변동성이 커진 국채 대신 금리 스와프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은행과 기업이 널리 쓰는 금리 파생상품인 스와프를 기준으로 하면, 고등급 회사채 격차는 약 1.52%포인트로 벌어진다. 국채 기준보다 높아 평가 착시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트레셔 픽스드 LLC의 이타이 루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채는 더 이상 무위험 지표가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기준을 선택해야 한다면 스와프를 쓸 것이다. 스와프 금리 곡선은 연속성이 더 높고 국채 곡선에서 나타나는 기술 왜곡 현상이 적다"고 설명했다.

물론 스와프를 기준으로 삼는 것에도 한계는 있다. 기준점을 바꾸는 것이 신용 시장의 숨은 위험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대럴 더피 재무학 교수는 "골대를 옮긴다고 해서 더 뛸 공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준 지표 변경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스와프 금리가 유용한 참고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데는 동의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현재 미국 기업들의 체력은 비교적 튼튼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부채 대비 수익 창출 능력을 꾸준히 개선해 왔으며 부채 비율도 개선 추세에 있다. 골드만삭스는 견조한 경제와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낙관 전망을 바탕으로 기업들이 예상보다 양호한 분기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세계 투자자 눈에는 신흥국 기업의 기초 여건이 상대적으로 더 매력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기업의 평균 부채 비율이 2.8배에 이르는 반면, 신흥국 기업은 평균 1.2배 수준으로 재무 건전성 면에서 우위를 보이기 때문이다.

미켈센은 지금 흐름을 'AA+' 등급의 미국 국채와 'AAA' 등급인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채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가상 질문으로 요약했다. 두 채권의 만기가 부채 한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2027년 1분기에 집중된다는 점을 일깨우며 그는 "국채에 투자하면 부채 한도 문제로 제때 원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지만, 신용등급이 더 높은 MS 채권을 산다면 원금 회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국채의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자금은 우량 회사채와 고신용 등급 신흥국 채권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미국 회사채 시장은 자금 유입으로 강세를 보이지만, 정권 위험이나 정치 불안 등 신흥 시장의 구조 위험과 비슷한 면이 늘어난 점은 숨은 부담이다. 국채가 더는 절대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인식이 번지면서 스와프 등 대체 기준 지표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미국 회사채 시장은 신흥국처럼 변한 미 국채의 위험을 대체하는 새로운 투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변화하는 시장 구조에 맞춘 투자 전략의 재편이 눈길을 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