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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30분 늦었을 뿐인데"...주말에 문 닫은 북극기지, 서방 군사력 민낯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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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30분 늦었을 뿐인데"...주말에 문 닫은 북극기지, 서방 군사력 민낯 드러내

러시아·중국 북극 군사확장 가속화하는데 NATO는 보급선도 제대로 못 받아
캐나다, 43억 달러 투자해 극초음속 미사일 탐지 레이더 구축
북극점 800㎞ 첩보기지는 1년에 한 번만 보급 가능
서방 국가들이 북극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 확장에 맞서는 과정에서 기본 보급 작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서방 국가들이 북극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 확장에 맞서는 과정에서 기본 보급 작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이미지=GPT4o
서방 국가들이 북극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 확장에 맞서는 과정에서 기본 보급 작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현지시간) 캐나다 보급선의 그린란드 군사기지 운항 과정을 3주간 동행 취재한 결과를 보도하며, 서방의 북극 방어 태세에 경종을 울렸다.

주말 퇴근에 눈보라 속 4시간 표류


캐나다 선적 화물선 MV 누날릭호는 지난 8월 몬트리올 인근 베캉쿠르항을 출발해 9일간 2500해리(4630)를 항해한 끝에 그린란드의 미국 피투픽 우주기지에 도착했다. 이 배에는 북극점에서 약 800㎞ 떨어진 캐나다 최북단 정보기지 '얼러트'의 시설 개선을 위한 건설자재가 실렸다. 얼러트 기지는 러시아 군사활동에 대한 핵심 정보를 수집하는 전략 거점이다.

그러나 배가 30분 늦게 도착하자 항만 노동자들은 이미 주말 휴가를 떠난 뒤였다. 도널드 깁슨(66) 선장과 20명의 선원들은 주말 내내 북극 눈보라 속에서 표류했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풍속 50노트(시속 약 93)의 강풍이 불면서 배의 닻이 가파른 해저 경사면에서 엉키는 사고가 일어났다. 누날릭호는 2.5톤 무게의 닻과 180m 체인을 끌고 4시간 동안 표류했으며, 주변에는 빙산과 해저 광케이블이 있어 충돌 위험이 컸다.

18세부터 항해를 시작해 48년 경력인 깁슨 선장은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우리를 받아주고 환영할 줄 알았다""러시아라면 항만 노동자들이 주말에 집에 갔다는 이유로 군사 보급선을 눈보라 속에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극점 800㎞ 기지, 1년에 한 번 보급


피투픽 기지에 도착한 화물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여기서 다시 항공기로 더 북쪽의 얼러트 기지까지 운송해야 했다. 얼러트 기지는 뉴욕과 디트로이트 사이 거리와 비슷한 약 800㎞를 북극점에서 떨어져 있으며, 화물선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캐나다 공군이 매주 소규모 보급을 하지만, 대규모 연료와 화물 수송은 연 2회만 가능하다. 그린란드를 거쳐 가는 해상 보급은 북극 해빙이 녹는 4~5개월 동안만 가능하다.

캐나다 당국자는 "만약 화물에서 무언가 빠진 게 있다면 기지 건설이 1년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극 작전의 위험성은 1991년 허큘리스 수송기가 얼러트 기지 착륙 중 추락해 5명이 사망한 사고에서도 드러났다. 구조대가 눈보라와 24시간 어둠을 뚫고 사고 현장에 도착하는 데만 30시간 이상 걸렸고, 마지막 생존자를 구출하는 데 추가로 이틀이 걸렸다.

"우주 개척만큼 어려운 도전"


알래스카대 페어뱅크스 북극안보복원력센터의 트로이 버파드 소장은 "북극은 우리가 적국과 대등하게 경쟁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지역"이라며 "서방은 20년간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테러 작전에 집중한 뒤 이제야 초점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극에서 상당한 군사력을 구축하는 것은 거의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며 "우리는 우주 탐사에 견줄 만큼 어려운 도전의 시작점에 있으며, 어느 쪽이 더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수십 년간 북극 기지를 확장해왔다. 콜라반도의 북방함대에는 핵무기를 포함한 첨단 육··공군 자산이 배치돼 있다. 모스크바가 미국을 미사일로 공격하는 가장 직접적인 경로는 북극 상공이다. 중국도 자국을 '근북극국'으로 선언하고 쇄빙선과 연구선을 배치했다. 중국 연구선 쉐룽2호는 올여름 2년 연속 캐나다 영해 인근을 지나갔으며, 지난해 캐나다와 미국 항공기는 알래스카 인근 국제 공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의 첫 합동 순찰을 요격했다.

43억 달러 투자와 극초음속 미사일 대응


캐나다 정부는 마크 카니 총리 취임 후 호주와 협력해 60억 캐나다달러(43억 달러, 61400억 원)를 투자해 수평선 너머 레이더를 개발하고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능력을 현대화하기로 약속했다. 캐나다군의 북극 상시 주둔도 강화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행정명령에서 미사일을 "미국이 직면한 가장 재앙적인 위협"으로 규정하고 차세대 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돔' 구축을 지시했다. 현재 서방의 북극 미사일 탐지는 피투픽과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의 조기경보 레이더에 의존하고 있다.

캘거리대 군사안보전략연구센터의 롭 휴버트 소장은 "냉전 시대처럼 러시아와 중국 군사력을 억제할 수 있을 만큼 현대화되고 유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자체 전투 능력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하지만, 억제력의 한 형태가 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극 방어의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러시아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낮은 고도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경로로 비행해 레이더 탐지가 어렵다. 중국도 2017년부터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있다. 미국은 궤도상에서 극초음속과 탄도미사일을 추적할 우주 센서를 구축 중이며, 캐나다의 수평선 너머 레이더는 북극점 상공의 저고도 미사일 탐지를 목표로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극 방어의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러시아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낮은 고도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경로로 비행해 레이더 탐지가 어렵다. 중국도 2017년부터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있다. 미국은 궤도상에서 극초음속과 탄도미사일을 추적할 우주 센서를 구축 중이며, 캐나다의 수평선 너머 레이더는 북극점 상공의 저고도 미사일 탐지를 목표로 한다.

냉전 유산 기지에 북극곰 출몰


피투픽 기지는 미국 최북단 군사시설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국과 덴마크가 조약을 맺고 그린란드에 건설했다. 당시 그린란드 곳곳에 12개가 넘는 미군 기지가 들어섰지만, 냉전 종료 후 대부분 문을 닫았고 피투픽만 홀로 남았다. 기지 뒤편으로는 60만 제곱마일(155만㎢) 이상의 광활한 빙상이 펼쳐져 있다. 산 정상의 콘크리트 고원에는 거대한 사다리꼴 모양의 레이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약 150명의 미군이 주둔한다. 지난해에는 북극곰이 활주로를 배회해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북극 기지의 고립과 열악한 환경은 서방이 이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데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 보여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