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실패 딛고 '명예 회복' 시도…파운드리 시장 재편 신호탄
테슬라 수주·미국 투자로 성장 발판…'양강 구도' 형성될까
테슬라 수주·미국 투자로 성장 발판…'양강 구도' 형성될까

아픈 손가락 4나노 딛고…퀄컴과 ‘2나노 재결합’ 시도
삼성 위탁생산 사업 부활의 핵심 열쇠는 최대 고객사였던 퀄컴과 신뢰를 회복하는 데 달렸다.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퀄컴에 2나노 공정으로 만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초기 샘플을 전달했다. 이 칩은 2026년 나올 퀄컴의 차세대 주력 모델 ‘스냅드래곤 8 엘리트 5세대’로 보인다. 이번 샘플 공급은 2021년 4나노 공정에서 불거진 발열, 수율, 전력 효율 문제로 퀄컴 물량 전체를 TSMC에 내줬던 삼성에는 기술력으로 과거 실패를 만회하고 관계를 정상화할 중대한 기회로 평가된다.
당시 실패는 삼성 위탁생산 사업에 뼈아픈 타격을 입혔다. 퀄컴이 물량을 TSMC로 옮기면서 삼성의 세계 위탁생산 시장 점유율은 12%를 밑도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삼성은 문제가 된 핀펫(FinFET) 구조에서 벗어나 차세대 트랜지스터 기술인 GAA(게이트올어라운드)를 세계 최초로 3나노에 도입했고, 2나노(SF2) 공정에도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킨 MBCFET(Multi-Bridge Channel FET) 구조를 적용해 기술 도약을 꾀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 2600’ 칩으로 2나노 시범 생산을 하며 수율을 안정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는 삼성이 엄격한 내부 기준을 통과한 뒤 퀄컴에 샘플을 제공한 만큼, 기술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분석한다.
물론 샘플 공급이 곧바로 대량 수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고객사는 6개월에서 1년 남짓 성능, 수율, 생산 확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는 기술 검증을 한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삼성은 퀄컴의 2차 공급사 지위를 확보하는데, 이는 단순한 물량 확보를 넘어 삼성 2나노 기술력이 시장에서 신뢰를 되찾는 상징이 될 것이다.
TSMC보다 33% 싼 가격…‘점유율’ 정조준
삼성의 또 다른 승부수는 ‘가격’이다. 대만 언론 연합보에 따르면 삼성은 2나노 웨이퍼 가격을 장당 2만 달러 수준으로 책정했다. TSMC의 예상 가격인 3만 달러보다 33%가량 저렴한 파격 조건이다. 이러한 가격 정책은 시장에 다시 진입하려는 전형적인 전략으로 풀이된다. TSMC가 애플, AMD, 미디어텍 같은 핵심 고객사들의 2나노 주문을 먼저 받으며 가격 인상까지 내비치는 자신감과 대조를 이룬다.
삼성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은 단기 수익보다는 시장 점유율을 넓혀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는 전략이다. 다만 삼성은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수율 안정, 전력·성능 개선, 공급망 다변화 등을 함께 추진하며 신뢰를 되찾으려 한다. TSMC에 집중된 최첨단 공정 수요를 자사 쪽으로 끌어들여 수율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엔비디아, 퀄컴, 테슬라 같은 큰 고객사를 본격적으로 공략하려는 계산이다. 특히 TSMC가 독차지한 고성능 컴퓨팅(HPC)과 AI 반도체 시장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지다.
테슬라·미국 투자로 미래 성장 발판 마련
삼성의 2나노 전략은 이미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테슬라와 22조8000억 원(159억 달러) 규모의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2세대 2나노 공정(SF2P)을 이용해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용 차세대 칩인 ‘AI6’를 생산한다. 이 칩은 차량용 체계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서버에도 쓸 예정이다. 삼성은 SF2P 공정이 1세대(SF2)에 비해 성능은 12% 높고, 소비전력은 25% 낮으며, 칩 면적은 8% 작다고 밝혔다. 테슬라와의 대규모 계약은 삼성 2나노 공정의 성능과 잠재력을 시장에 증명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이와 함께 지정학적 위험에 대응하고 서방 고객사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국 투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 2026년 말까지 한 달에 1만6000~1만7000장 규모의 2나노 웨이퍼 생산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이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정책에 따르고, 대만 해협 같은 지정학적 위험을 줄이며 공급망을 여러 곳으로 나누려는 서방 고객사를 끌어들이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다. 이를 통해 삼성은 미국 안에서 TSMC,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략적 제조 협력사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다.
‘품질 우선’ TSMC…양강 구도 이룰까
삼성의 거센 공세에 맞서는 TSMC는 자신감을 유지하고 있다. TSMC는 예정대로 2025년 하반기 N2(2나노) 양산을 시작하고 2026년에는 성능을 높인 N2P 공정을 선보이며 기술 격차를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TSMC는 삼성의 가격 공세에 직접 맞서기보다 ‘높은 품질과 수율’을 내세워 신뢰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의 이번 움직임은 ‘2나노 기술 재도전, 공격적인 가격 정책, 미국 시장 집중’이라는 세 갈래 전략으로 요약된다. 디지타임즈는 이를 ‘위탁생산 전쟁 2.0(Foundry Wars 2.0)’의 시작으로 평가하며, 만약 삼성의 2나노 공정 수율과 성능이 시장 기대를 채운다면 2나노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TSMC와 삼성이 경쟁하는 ‘양강 구도’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도전은 단순한 점유율 경쟁을 넘어, 삼성 위탁생산 사업의 ‘명예 회복전’이라는 점에서 그 결과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