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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마이크론, 9나노 D램 직행·1000억 달러 美 투자…반도체 패권 '이중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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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마이크론, 9나노 D램 직행·1000억 달러 美 투자…반도체 패권 '이중 승부수'

AI發 D램 대란 속 삼성·하이닉스에 맞불…기술·생산 '두 마리 토끼' 잡는다
뉴욕주 역사상 최대 투자로 美 본토에 생산기지…'반도체 벨트' 핵심 축 부상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AI발 D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술과 생산 양면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차세대 9나노 D램 공정으로 직행하는 기술적 도약과 함께, 뉴욕주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본토에 핵심 생산 거점을 구축하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AI발 D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술과 생산 양면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차세대 9나노 D램 공정으로 직행하는 기술적 도약과 함께, 뉴욕주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본토에 핵심 생산 거점을 구축하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사진=로이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수요 폭증으로 2026년까지 공급 부족의 터널에 갇힐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 미국 최대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기술과 생산 양면에서 전례 없는 승부수를 던졌다.

20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와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기술 초격차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차세대 공정을 건너뛰고 9나노 D램으로 직행하는 과감한 로드맵을 추진하는 한편, 미국 본토에 1000억 달러(약 14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 기지' 구축을 본격화했다. 다가올 기술 경쟁과 지정학적 위험에 동시에 대비하려는 마이크론의 치밀한 이중 포석으로 평가된다.

AI가 부른 공급 대란, 2026년까지 심화


수밋 사다나 마이크론 수석 부사장 겸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최근 "D램 시장이 극심한 공급 부족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2026년까지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급난의 핵심 진원지는 AI 반도체의 필수 부품으로 떠오른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사다나 부사장은 "HBM은 표준 D램에 비해 약 3배의 웨이퍼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생산 능력의 한계를 지적했다.

마이크론은 이미 HBM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25년 2분기(6~8월) HBM 매출은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에 육박했으며, 이러한 수요에 힘입어 3분기(9~11월) 연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47%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신규 공장 가동까지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어 공급 제약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경쟁사 제품보다 전력 소비가 낮은 차세대 HBM4 제품의 샘플링을 시작하며 기술 우위를 이어가려 한다. 수개월 내 공급 계약이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2026년 출하량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기존 DDR4 D램조차 수요를 완전히 충족하지 못해, 단종 계획을 일부 수정하고 미국 공장을 통해 장기 고객사를 위한 생산을 소폭 연장하기로 결정했지만, 전체 수요를 맞추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은 '퀀텀 점프', 생산은 '미국·일본' 투트랙


시장 공급난에 대응하는 동시에, 마이크론은 선두 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위한 기술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현재 7세대(1d) 10나노 공정 이후, 통상적인 8세대 10나노 공정(1e)을 건너뛰고 곧바로 9나노 D램 양산으로 직행하는 파격적인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

D램 제조 공정에서 선폭을 줄이는 것은 집적도와 성능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현재 상용화된 최신 1c 노드의 선폭이 약 11.2나노인 점을 고려하면, 9나노급으로의 전환은 의미 있는 기술적 도약이다. 한 업계 소식통은 마이크론의 선택지가 두 가지라고 분석했다. 현재 1d 공정에서 1e 공정(약 10.1나노)을 거쳐 차근차근 나아가는 전통적 경로와, 1e를 생략하고 바로 9나노로 진입하는 야심 찬 경로다. 이 과감한 시나리오의 성패는 현재 1d 공정의 선폭을 얼마나 더 미세하게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 만약 1d 공정 기술을 약 10.2나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중간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 이는 이미 1d 공정에서 9나노(0a)로의 빠른 전환을 준비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속도전에 보조를 맞추려는 전략적 판단이다.

한편, D램의 미래로 불리는 3D D램의 양산 시점은 기술적 난제와 비용 문제로 2033년에서 2034년 이후로 지연되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시제품이 16~24개 층에 머물러 있는 반면, 상업적 가치를 확보하려면 90~100개 층의 적층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3D D램이 본격 도입되기 전까지 향후 3~4세대 동안은 '4F²' 평면 셀 설계 기술이 과도기적 해결책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마이크론의 기술적 야망은 미국과 일본에 구축하는 거대한 생산 기지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 뉴욕주 오논다가 카운티에 건설 중인 '메가팹' 프로젝트는 총 1000억 달러(약 140조 원)가 투입되는 뉴욕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투자 사업이다. 이 공장은 9나노 이하 첨단 D램 생산을 목표로 하며, 완공 시 향후 20년간 약 9000개의 직접 고용을 포함해 총 5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전체 반도체 생산량의 약 25%를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뉴욕주가 클레이 변전소와 공장을 잇는 3.2km 길이의 345킬로볼트(kV) 지중 전력선 건설을 승인하면서 프로젝트는 본궤도에 올랐다.

마이크론의 대규모 투자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히가시히로시마 공장에도 2025 회계연도부터 5년간 총 1조 5000억 엔(약 99억 4000만 달러)을 투자해 차세대 D램 연구 및 제조 역량을 강화한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이 투자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약속하며 지원에 나섰고,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역시 2025년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공급에 대비해 현지 부품 창고 규모를 두 배로 늘리는 등 협력 생태계도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이 거대 공장들은 마이크론이 개발 중인 차세대 D램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자립 목표를 달성하는 핵심 역할을 맡게 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