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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인텔, '기술 부채' 수렁…파운드리 3조 적자에도 14A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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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인텔, '기술 부채' 수렁…파운드리 3조 적자에도 14A '승부수'

20A 공정 폐기, 18A 수율 난항…"업계 수용 수준 2027년에나"
엔비디아·美정부 지원 '변수'…"14A, 18A보다 출발 좋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이 3조 원대 적자를 내는 등 '기술 부채'로 고전하는 가운데 14A 공정에 승부수를 띄웠다. 20A 공정 폐기, 18A 수율 난항 등 위기 속에서 인텔은 엔비디아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변수로 2027년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텔 파운드리 사업이 3조 원대 적자를 내는 등 '기술 부채'로 고전하는 가운데 14A 공정에 승부수를 띄웠다. 20A 공정 폐기, 18A 수율 난항 등 위기 속에서 인텔은 엔비디아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변수로 2027년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한때 '반도체 제왕'으로 군림했던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 수년째 '계단에서 넘어지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과거의 어리석음과 오만, 기술 실수가 겹치며 누적된 '기술 부채'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팻 겔싱어 전 CEO에 이어 립부 탄 현 CEO 체제에서도 4년간 5개 공정 도입(5N4Y)이라는 야심 찬 계획을 밀어붙였으나, 연이은 공정 실패와 수율 문제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고 IT전문 매체 넥스트 플랫폼이 지난 24일(현지시각) 진단했다. 인텔은 이에 무리한 TSMC 추격전을 멈추고, '단계별 복원'이라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선회했다. 2026년 정상화를 목표로 18A(1.8나노)와 14A(1.4나노) 공정의 명운(命運)을 걸었다.

수십 년간 인텔은 자사 칩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의 상징이었다. 자사 설계에만 파운드리 역량을 투입하며 파운드리는 인텔 제품 그룹만을 유일한 고객으로 삼았다. 인텔 CPU 제품 그룹은 자사 파운드리가 신흥 강자 TSMC를 따라잡는 것을 당연시했다. AMD, IBM 등 경쟁사들이 파운드리 유지가 어렵다며 사업을 포기하는 와중에도 인텔의 오만은 이어졌다.

글로벌파운드리스가 10나노·7나노 공정을 포기했을 때, 인텔 역시 10나노 이하 EUV 공정 상용화에 발목이 잡혔다. 14나노에 장기간 갇혀 있는 동안, R&D 역량의 상당 부분이 결함 개선(Bug Fix) 등 유지보수로 소모되며 새로운 혁신 기술 도입이 느려졌고 경쟁력도 악화했다. 반면 TSMC는 7나노와 5나노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은 AMD였다. AMD는 글로벌파운드리스 14나노를 거쳐 TSMC 7나노(2019년 '로마'), 5나노(2021년 '밀란')로 직행하며 인텔의 서버 CPU 시장 점유율을 무섭게 잠식했다. IBM 역시 삼성전자 7나노·5나노 공정에 발이 묶였다.
인텔이 10나노(인텔 7) 출시에 수년을 허비한 것을 감안하면, 4년간 5개 신규 공정을 도입하겠다는 '5N4Y' 계획은 처음부터 무리수였을 수 있다. '기술 단계를 건너뛰는' 이 전략은 한계에 부딪혔고, 인텔 20A 노드는 폐기했다. 인텔 4 공정은 제온 CPU나 데이터센터 GPU의 핵심인 컴퓨트 코어에 사용되지 못하고 '그래나이트 래피즈' 등 신형 제온 6의 I/O 다이에만 쓰이는 데 그쳤다. 핵심 컴퓨트 코어는 인텔 3 공정으로 생산했다. 이후 인텔은 18A 공정 양산과 상용화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20A 공정을 중단했지만, 사실상 또다시 '계단을 건너뛴' 셈이다.

18A 수율 난항, 14A는 '미지수'…외부 고객 유치 '빨간불'


인텔은 2030년대까지 대량 양산될 것이라 공언하는 18A 공정의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고객 신뢰 하락으로 외부 고객 유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2025년 기준 6개월간 외부 고객 매출은 약 5300만 달러(약 760억 원)에 불과하다. 18A 수율 역시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14A 공정은 더욱 심각하다. 인텔은 지난 7월 "외부 고객이 14A를 채택하지 않으면 공정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고 시인했다. 인텔 제품 그룹 혼자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8A 기술을 사용하는 자체 차세대 CPU '클리어워터 포레스트'(제온 7 E-코어) 출시마저 2026년으로 미뤄졌다. 18A 기반 '다이아몬드 래피즈'(제온 7 P-코어) 역시 2026년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14A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18A에 머무르거나 자존심을 굽히고 TSMC의 A16/A14 공정에 자사 칩 생산을 맡길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인텔의 3분기 재무 실적은 '추락'은 멈췄음을 보여준다. 매출은 136억 5000만 달러(약 19조 65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고, 엔비디아의 투자금 유입 등이 반영된 순이익은 42억 7000만 달러(약 6조 1400억 원)로, 약 170억 달러(약 24조 4700억 원)의 손실을 냈던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했다. 데이터센터(DCAI) 그룹 영업이익은 9억 6400만 달러(약 1조 38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5배 급증했다.

그러나 파운드리 사업부는 여전히 '막대한 손실'을 기록 중이다. 2025년 3분기 파운드리 사업의 적자 폭은 약 23억 달러(약 3조 3100억 원)로, 전분기(30억 달러) 대비 소폭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2025년 상반기에만 150억 달러(약 21조 5900억 원)의 적자를 냈고 2026년 최대 180억 달러(약 25조 9100억 원) 손실이 예상되는 등, 인텔이 처한 재무 위기가 심각함을 반영한다.

엔비디아·美정부 지원 변수…'14A 승부수'로 2027년 흑자 목표


인텔의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8A 수율에 대해 "공급 물량을 맞추기에는 적절하지만, 목표 마진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업계 수용 수준은 2027년이나 되어야 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다만 그는 차세대 14A 공정이 18A 대비 성능과 수율이 더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2026~2027년 대량 생산과 외부 고객 확대가 관건"임을 밝혔다. 진스너 CFO는 "데이터센터 부문은 적절한 비용 구조와 경쟁력 모두 갖추지 못해 제대로 된 마진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수년이 걸리는 과제"라고 토로했다.

인텔의 생존은 14A 공정의 외부 고객 확보에 달렸다. 유력한 후보는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50억 달러(약 7조 원) 규모의 인텔 주식을 매입하고, 차세대 제온에 NVLink 포트를 추가하는 협력을 진행 중이다. 인텔의 립부 탄 CEO 역시 "14A 공정에 막대한 수요를 가진 한 고객사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 중"이라고 밝혀, 이 고객이 엔비디아임을 시사했다.

미국 정부의 지원도 변수다. 미 정부는 칩스법(CHIPS Act) 보조금 외에도 2025년 89억 달러(약 12조 8140억 원)를 투입해 인텔 지분 10%를 확보하는 등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텔은 2030년 5000억 달러(약 719조 원) 규모로 전망되는 데이터센터 GPU 시장을 사실상 엔비디아에 내주고, 파운드리 생존을 도모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알테라(Altera) 등 비핵심 사업 매각, 부채 상환, 기술 인력 영입 등으로 재무 건전성을 개선 중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단기 적자가 불가피하나, 2027년 이후 14A/18A 공정 안정화와 외부 고객 확보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실질적인 경쟁자로 복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