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FIUS 승인에도 日대사 "정부 반응 있을 것"…퍼스 헨더슨 조선소 놓고 신경전
이미지 확대보기스즈키 가즈히로 주호주 일본대사는 지난 13일 캔버라 국가언론클럽 연설에서 한화의 오스탈 인수 가능성에 대해 "그런 결정이 내려지면 일본 정부가 반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직 그런 일은 없었고 호주를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한화, 미국 승인 받고 지분 확대 박차
한화는 올 3월 오스탈 보통주 9.9%를 취득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설립한 호주법인 HAA No.1을 통해서다. 이제 지분을 19.9%까지 늘리기 위해 호주 외국투자심의위원회(FIRB)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점은 미국이 먼저 승인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한화의 오스탈 지분을 100%까지 늘리는 것에 대해 "미해결 국가안보 우려가 없다"며 허가했다. 오스탈은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핵심 업체인데도 미국은 한화를 믿을 만한 파트너로 판단했다.
한화글로벌디펜스 마이클 쿨터 CEO는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며 "한국의 기술과 실무 관행을 미국으로 이전해 미국 조선업을 끌어올리려는 미국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퍼스 조선소 놓고 한·일 미묘한 긴장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퍼스 헨더슨 조선소를 둘러싼 경쟁이 있다. 일본은 최근 호주 해군의 차기 범용 프리깃함 사업에서 독일을 제치고 최종 선정됐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개량형 모가미급 프리깃함 11척을 100억 호주달러에 공급하기로 했다. 첫 3척은 일본에서 건조하고 나머지 8척은 헨더슨 조선소에서 만든다.
한화가 오스탈의 최대 주주가 되면 같은 지역에서 일본과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다. 오스탈은 호주 정부로부터 '전략 조선업체' 지위를 받았고, 헨더슨 조선소에서 상륙정과 순찰선을 건조하고 있다.
굴곡 많았던 한화의 오스탈 인수 시도
한화는 2023년 9월부터 오스탈 인수를 추진했으나 오스탈은 "규제 승인을 받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오스탈은 2023년 11월 호주 국방부와 전략 조선업체 양해각서를 맺으며 자국 조선산업 보호 의지를 드러냈다.
2024년 9월 한화오션은 인수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오스탈 측이 제시한 실사 조건이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스탈은 규제 승인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발동할 수 있는 500만 달러(약 70억 원) 해약금 조항을 요구했다. 게다가 합의했던 현장 방문을 이틀 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하지만 한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완전 인수 대신 단계적 지분 확대로 전략을 바꿨다. 오스탈은 호주·미국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업체이자 AUKUS(미·영·호 안보동맹) 잠수함 사업에 참여할 핵심 자산이다.
호주 시장서 입지 넓히는 한화
한화는 이미 호주 방산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2023년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호주법인이 레드백 보병전투차 129대를 24억 달러(약 3조 4900억 원)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2021년 K-9 자주포 수출에 이은 대형 계약이다.
한화오션도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 3월 미 해군 보급함 6개월 수리를 마쳤고,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미 해군 전투함 건조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호주 정부는 한화의 지분 확대를 문제 삼지 않았다. 리처드 말스 국방장관은 지난 5월 "궁극적으로 오스탈이 결정할 일"이라며 "정부는 한화의 움직임을 우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단, "민감 기술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안보 장치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역사 갈등 넘어선 방산협력, 시험대 오른다
한·일 간 역사적 갈등도 변수다. 일본은 1910~1945년 한국을 지배했고,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양국 관계는 때때로 긴장을 겪었다. 스즈키 대사는 연설에서 2024년 다윈에서 열린 일본-호주 합동 훈련을 언급하며 "가미카제 전대장으로 죽을 준비를 했던 조종사의 아들인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고 과거사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일본의 선택지는 제한적
일본이 한화의 오스탈 지분 확대를 막을 카드는 많지 않다. 호주는 주권국가로서 외국인 투자를 자체 판단한다. 미국도 이미 승인했다.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외교 채널을 통한 우려 표명 정도다.
오히려 일본은 호주 프리깃함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이 사업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특별 전략 동반자인 호주와의 협력"으로 규정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총장 출신인 요시다 요시히데 전 통합막료장은 "호주와의 공동 개발·생산을 우선하겠다"며 자국 프로그램도 미룰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호주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일본 모두와 방산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FIRB가 한화의 지분 확대를 승인하면 헨더슨 조선소는 한국과 일본 방산기업이 나란히 자리 잡는 특이한 풍경이 펼쳐질 전망이다. 호주가 이 복잡한 삼각 구도를 어떻게 관리할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