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오픈AI "100% 증설" 압박…TSMC '요지부동'
"AI 붐 꺼지면 공장 멈춰"…과거 '공급과잉' 트라우마
"AI 붐 꺼지면 공장 멈춰"…과거 '공급과잉' 트라우마
이미지 확대보기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음에도, TSMC가 고객사들의 거센 증설 요구에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며 의도적인 '속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현재 가용 가능한 거의 모든 고성능 AI 프로세서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대만 파운드리 TSMC를 향한 빅테크 기업들의 압박 수위는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고 크립토 랭크가 지난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향후 2년간 5000억 달러(약 720조 원) 규모의 주문을 이행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밝혔으며, TSMC에 엔비디아 칩 생산량을 100% 늘려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직접 대만을 찾기도 했다. 오픈AI 역시 별도로 AMD와 6기가와트(GW) 전력에 해당하는 약 300만~600만 개의 칩 구매 계약을 맺었으며, 브로드컴과는 10GW 규모의 추가 계약을 체결하는 등 AI 칩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 구동 프로세서를 향한 이러한 무분별한 '싹쓸이' 경쟁은 심각한 공급 부족 우려를 낳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TSMC를 향해 "그냥 생산 능력을 더 증설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는가 하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자사의 AI 및 로보틱스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아예 자체적인 거대 반도체 공장(팹)을 건설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TSMC의 회사 수입 대비 인프라 투자 비중은 오히려 감소했으며, 고객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도 향후 몇 년간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TSMC가 의도적으로 생산 능력 확대를 주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I칩, 사실상 'TSMC 독점'…인텔·삼성 부진
칩 설계 기업(팹리스) 입장에서 TSMC 외의 대안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때 제조 공정의 리더였던 인텔은 최첨단 프로세서 생산 경쟁에서 뒤처진 상태다.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는 삼성전자는 "고질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테슬라는 지난 7월 삼성전자와 165억 달러(약 24조 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내년부터 텍사스에서 AI 칩 생산을 시작하기로 했으나, 해당 벤처 사업은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만의 이 거대 파운드리 하우스는 감당하기 힘든 주문에 파묻힌 형국이다. 지난달 웨이저자 TSMC 최고경유자(CEO)는 "AI 관련 제품의 생산 능력이 매우 빠듯하다"며 "부족분을 해결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공식 인정하며 경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주문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는 엔비디아가 내년에 630만 개의 AI 칩을 공급받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올해 물량 대비 23% 급증한 수치다. 구글, 메타 등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에 칩을 공급하는 브로드컴 역시 29% 증가한 540만 개의 유닛을 필요로 할 전망이다. JP모건 체이스 분석가들은 TSMC의 가장 진보된 두 가지 공정(노드)이 향후 몇 년간 최대 가동률(풀 캐파)로 운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 막대한 돈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최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팹) 하나를 짓는 데는 약 20조 원에 달하는 비용과 3~4년의 건설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 내 건설은 비용을 더욱 증가시킨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 등에 6개의 신규 첨단 공장을 짓기로 약속했으며, 총비용은 1650억 달러(약 240조 원)에 육박한다. 고질적인 문제를 겪는 미국의 건설 부문은 이 공장들이 대만의 유사 시설보다 "상당히 더 많은 비용"과 더 긴 완공 시간을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도체 쓴맛' 본 TSMC…AI 붐에도 '신중모드'
TSMC가 신중한 접근 방식을 취하는 데는 '막대한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은 역사적으로 공급 부족이 곧바로 용량 과잉으로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경기 순환(사이클)'을 경험해왔다. 제조업체들은 호황기에 공격적으로 증설했다가, 결국 주문이 끊겼을 때 가동하지도 못하는 공장만 떠안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헤지펀드 브리슬문 캐피털(Bristlemoon Capital)의 대니얼 우는 TSMC가 팬데믹 기간 동안 비교적 단순한 칩(레거시 칩)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를 늘렸던 사례를 지적했다. 현재 해당 프로세서에 대한 TSMC의 생산 능력은 "활용도가 낮은 상태"로 남아있다.
TSMC는 당시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또한 인텔과 삼성이 "마침내 생산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AI 칩 시장이 순식간에 '공급 과잉' 상태로 뒤집힐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생산 능력을 더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고객사들은 TSMC가 실제로 공장을 지을 때까지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다. 대니얼 우는 "만약 TSMC가 2년간 800억~1000억 달러(약 116조~140조 원)를 쏟아부었는데 AI 붐이 식어버린다면, 몇 년간 공장을 놀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TSMC의 이러한 신중함은 고객사들의 좌절감을 키우고 있지만, 그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보수적인 기조를 바꿀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