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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 디어 "내년 북미 매출 20% 급감"... 美 농업 경기 '한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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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 디어 "내년 북미 매출 20% 급감"... 美 농업 경기 '한파' 지속

대형 트랙터 재고 17년 만에 최저... 고금리·무역전쟁 직격탄에 농가 지갑 '꽁꽁'
"회복까지 최소 1년"... CEO "불확실성 역풍 맞았다" 고백에 주가 5.7% 급락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업체인 디어앤컴퍼니(Deere & Co., 이하 디어)가 지속되는 무역 전쟁과 비용 상승, 농작물 가격 하락이라는 '삼중고' 탓에 2026년에도 미국 농업 경기가 심각한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업체인 디어앤컴퍼니(Deere & Co., 이하 디어)가 지속되는 무역 전쟁과 비용 상승, 농작물 가격 하락이라는 '삼중고' 탓에 2026년에도 미국 농업 경기가 심각한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GPT4o
미국 농가의 암울한 실상이 드러났다.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업체인 디어앤컴퍼니(Deere & Co., 이하 디어)가 지속되는 무역 전쟁과 비용 상승, 농작물 가격 하락이라는 '삼중고' 탓에 2026년에도 미국 농업 경기가 심각한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지난 26(현지시각) 악시오스는 디어의 경영 실적 발표를 인용해 이런 현실을 전했다.

고금리·무역전쟁 여파... 북미 대형 농가 장비 구매 ''


디어는 이날 발표한 2026 회계연도 전망에서 핵심 시장인 미국과 캐나다의 대형 농가 대상 매출이 15%에서 최대 20%까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미국 농업계가 지난 2년간 겪어온 불황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러한 매출 감소 전망의 배경에는 옥수수, 대두(), 밀 등 주요 밭작물 재배 농가가 직면한 유동성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농가들은 고금리 기조 유지와 농자재 비용 상승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신형 장비를 구매하기보다는 기존 장비를 수리해 쓰거나 중고 장비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디어 측은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대형 트랙터 재고가 회계연도 말 기준으로 지난 17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회사가 수요 부진에 대응해 생산량을 보수적으로 조절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존 메이(John May) 디어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우리 조직은 경기 순환 주기를 관리하는 데 익숙하지만, 올해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고조된 불확실성이라는 추가적인 역풍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순이익 감소와 주가 급락... 시장의 냉혹한 평가


디어의 지난 4분기(회계연도 기준) 실적을 살펴보면, 전체 순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이는 농기계 외 다른 사업 부문의 선전에 힘입은 결과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익성을 나타내는 순이익은 107000만 달러(15600억 원)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5000만 달러(18200억 원)보다 줄어들었다.
시장은 디어의 보수적인 내년도 전망과 수익성 악화에 즉각 반응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디어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5.7% 급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 주가 하락이 단순한 실적 부진을 넘어, 미국 실물 경제의 근간인 농업 분야의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농업 부문의 침체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촉발된 관세 전쟁의 장기화와 맞물려 있다. 당시 무역 갈등은 대두와 돼지고기 등 미국의 주요 농산물 수출에 타격을 입혔고, 그 여진이 현재까지 이어지며 농가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내년이 바닥" vs "낙관 이르다"... ·중 무역합의가 변수


어두운 전망 속에서도 회복의 불씨는 남아있다. 조시 젭슨(Josh Jepsen) 디어 최고재무책임자(CFO)"내년이 이번 하강 사이클의 바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긍정적인 요인들을 제시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수는 지난 10월 발표된 미국과 중국 간의 새로운 무역 합의다. 젭슨 CFO"새로운 합의가 외국인들의 구매 확약(purchase commitments)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의가 장기간 지속된 무역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미국산 농산물의 수출 길을 다시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또한, 미국 내 바이오연료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강화되고 있고, 최근 원자재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는 점도 긍정적이다. 젭슨 CFO"옥수수와 대두 소비가 견조하며 향후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곡물 수요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은 지난 분기에 비해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디어의 이번 전망은 미국 농가들이 다시 성장을 구가하며 지갑을 열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섣불리 바닥을 논하기보다는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카나리아' 디어가 울렸다... 실물경기 침체 신호탄인가


'농슬라(농기계의 테슬라)'로 불리는 디어의 실적 가이던스는 통상 세계 실물 경기를 미리 보여주는 선행 지표로 통한다. 농산물은 필수 소비재이자 바이오연료의 원료로서,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번 디어의 실적 전망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북미 대형 농가'의 구매력 감소다. 이는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계 기업뿐만 아니라 자본력을 갖춘 대형 농장주들에게까지 전이됐음을 의미한다. 특히 '17년 만의 최저 재고'라는 수치는 기업들이 수요 회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설비 투자를 극도로 꺼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미·중 무역 합의의 효과가 2026년부터 본격화될 경우, 곡물 수출 증가와 함께 농가 소득이 개선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바이오연료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기후 변화에 따른 작황 변동성 등 변수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디어의 경고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실적 부진을 넘어, 글로벌 무역 환경의 파고 속에서 미국 농업 경제가 겪고 있는 구조적 위기를 대변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