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카고상품거래소 마비 사태, '공랭식 인프라'의 물리적 한계 드러내
사모펀드로 넘어간 데이터센터, '비용 절감' 경영이 부른 예견된 인재(人災)
사모펀드로 넘어간 데이터센터, '비용 절감' 경영이 부른 예견된 인재(人災)
이미지 확대보기전 세계 파생상품 거래의 심장부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멈춰 섰다. 해킹도, 시스템 오류도 아니었다. 범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열(Heat)'이었다. 일일 명목 거래액만 2경 5000조 원(약 25 quadrillion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금융 요새가 고작 냉각 장치 고장으로 무력화된 이 사건은, AI와 고성능 반도체 시대가 직면한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디지털 경제를 떠받치는 물리적 인프라가 '발열'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다.
2.5경 원을 태워버릴 뻔한 '침묵의 열기'
사고의 진원지는 미국 일리노이주 오로라(Aurora)에 위치한 사이러스원(CyrusOne) 데이터센터다. 이곳은 단순한 전산실이 아니다. 100만분의 1초를 다투는 초단타 매매(HFT) 트레이더들이 서버를 입주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월가 금융 자본의 '물리적 최전선'이다.
지난 11월 27일, 이곳의 핵심 설비인 '칠러 플랜트(Chiller Plant)'가 작동을 멈췄다. 당시 외부 기온은 영하 1도였다. 창문만 열어도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날씨였지만, 수만 개의 고성능 서버가 뿜어내는 열기는 외부의 냉기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반도체의 역습, "더 이상 공기로는 식힐 수 없다"
이번 사태는 '공랭식(Air Cooling)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다. 데이터센터는 본질적으로 전기를 '계산 능력(Compute)'과 '열(Heat)'로 바꾸는 거대한 기계다.
문제는 최근 AI 붐을 타고 데이터센터에 입주하는 서버들의 사양이 급변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의 GPU와 같은 AI 가속기들은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며 그에 비례하는 열을 내뿜는다. 일반 사무용 빌딩보다 단위 면적당 에너지 소비량이 50배나 많다. 2009년 착공되어 2016년 완공된 오로라 데이터센터와 같은 '레거시(Legacy)' 시설들은 이러한 고밀도 발열을 감당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전통적인 공랭식은 에어컨 바람을 불어 넣어 열을 식히지만, 칩의 집적도가 높아진 지금은 한계에 봉착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특수 용액에 서버를 담그거나 칩에 액체를 흘려보내는 '액체 냉각(Liquid Cooling)'이다. 액체는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월등히 높다. 하지만 설치 비용이 비싸고, 물 부족 문제나 누수 위험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동반한다. 이번 CME 사태는 구형 인프라와 신형 컴퓨팅 파워 사이의 '열역학적 불일치'가 빚어낸 구조적 모순이다.
사모펀드가 주인 된 데이터센터, '안전'보다 '이익'이었나
금융권과 IT 업계에서는 사모펀드의 경영 방식이 이번 사태의 간접적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사모펀드는 통상적으로 투자금 회수를 위해 비용 절감과 수익성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한다.
데이터센터의 생명은 '이중화(Redundancy)'다. 메인 냉각기가 고장 나면 즉시 예비 장비가 돌아가야 한다. 사이러스원 웹사이트에는 "완벽한 이중화 설비를 갖췄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EY-파르테논의 토마스 솔렐락 파트너는 "이 정도 규모의 센터에서 고장이 서비스 중단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설계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이중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막대한 유지비용이 드는 예비 설비 관리에 소홀했거나, 효율성을 핑계로 안전 마진을 줄인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물 부족과 열 폭주, AI 시대의 이중고
데이터센터가 멈추면 단순히 주식 거래만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1월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 장애로 챗GPT가 먹통이 되고,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장애가 일상을 마비시킨 사례들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증명한다.
냉각을 위해 막대한 양의 물을 증발시키는 냉각탑 방식은 지역 수자원을 고갈시킨다는 환경적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AI 산업이 커질수록 데이터센터는 더 뜨거워질 것이고, 이를 식히기 위한 비용과 리스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2경 5000조 원의 돈이 오가는 '금융의 신전'이 고장 난 에어컨 때문에 멈췄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화려한 AI 기술과 금융 공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인프라, 그리고 그 인프라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투기 자본의 결합이 만들어낸, 어쩌면 예견된 재난이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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