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춤추는 로봇은 거품"…中 정부 경고에 주가 20% 와르르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춤추는 로봇은 거품"…中 정부 경고에 주가 20% 와르르

적자투성이 유비테크 등 주가 2배 폭등…PER 58배 '과열'
모건스탠리 "2030년 전망 90% 삭감"…월가도 '손절' 경고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중국 정부가 야심 차게 쏘아 올린 '로봇 굴기(堀起)'가 스스로 쏜 화살에 맞았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유동성 잔치를 벌이던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역설적으로 당국의 '거품 경고' 한마디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화려한 '춤추는 로봇' 영상에 환호하며 펀더멘털(기초 체력)과 무관하게 치솟던 주가는 차갑게 식었다. 시장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조정이 아닌, AI(인공지능)와 로봇 테마 전반에 만연한 '묻지마 투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 시각) 중국 로봇 주식의 급락세를 집중 조명하며, 화려한 비전 뒤에 가려진 부실한 수익 구조와 기술적 한계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中 정부가 키우고 직접 터뜨린 '버블'


올해 중국 증시에서 '솔랙티브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지수(Solactive China Humanoid Robotics Index)'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지난 10월 고점까지 연초 대비 60% 가까이 폭등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항저우 유니트리 테크놀로지(Unitree Technology)의 로봇들이 춘절 갈라쇼에서 일사불란한 군무를 선보인 장면은 중국의 '기술 자부심'을 자극했고, 베이징 당국은 2030년까지 로봇 산업을 6대 신규 경제 성장 동력으로 지정하며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파티의 불빛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중국 정부였다. 중국 최고 경제 계획 기구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최근 "150개 이상의 기업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로봇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시장의 난립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반(反) 네이쥐안(anti-involution)' 기조와 맞닿아 있다. '네이쥐안'은 질적 성장 없이 내부의 소모적 경쟁만 반복하는 현상을 뜻한다. 당국은 지방 정부들이 실질적인 기술력이나 자원 없이 맹목적으로 로봇 산업에 뛰어들면서, 저품질의 복제품만 양산하고 R&D(연구개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하이 청저우 투자관리의 푸 지펑(Fu Zhifeng)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방 당국이 신기술이라는 깃발 아래 '군중심리(Herd Mentality)'에 휩쓸려 비효율적인 투자를 남발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의 경고 직후 해당 지수는 고점 대비 20% 가까이 급락하며 시장의 공포를 그대로 반영했다.

적자 기업이 주도한 'PER 58배' 모래성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의 내실이 주가 상승분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로봇 섹터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무려 58배에 달한다. 이는 중국 우량주 중심의 CSI 300 정보기술 지수(약 32배)와 비교해 두 배 가까운 고평가 상태다.

개별 기업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인 유비테크(UBTech Robotics Corp.)는 올 상반기에만 4억 1400만 위안(약 585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가는 올해 들어 두 배 이상 폭등했다. 닝보 중다 리더(Ningbo Zhongda Leader) 역시 3분기 순이익이 19% 감소했음에도 주가는 186%나 치솟았다.

옌윤 패밀리 오피스의 라비 웡(Ravi Wong) 부사장은 "핵심 부품 기업을 제외한 휴머노이드 및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의 70% 이상이 여전히 적자 늪에 허덕이고 있다"며 "현재의 주가는 내년도 기대 실적까지 과도하게 '가불'해 쓴 수준(Overdrawing performance expectations)"이라고 꼬집었다. 실적이라는 알맹이 없이 기대감만으로 부풀려진 전형적인 버블의 징후다.

모건스탠리 "장밋빛 전망 10분의 1로 뚝"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중국 로봇 산업에 대한 눈높이를 대폭 낮추고 있다. 기술적 완성도와 상용화 속도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냉정한 분석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로봇이 인간 노동력 대비 효율성이 낮아 산업적 활용에 의문이 든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낙관론자들은 2026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1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지만, 모건스탠리는 2026년 1만 2000대, 2030년에도 11만 4000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시장의 장밋빛 전망을 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한 충격적인 수치다.

골드만삭스 또한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그들은 "단순한 시제품 공개가 아닌, 핵심 제품의 성능 향상과 구체적인 최종 사용 사례(Use cases)가 입증되어야만 진정한 '기술적 변곡점'이 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춤추는 영상만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생존자 1~2곳 뿐"…살벌한 옥석 가리기


물론 비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씨티그룹은 중국의 방대한 엔지니어 풀과 제조 공급망의 원가 경쟁력이 장기적으로는 산업을 지탱할 것이라며, 내년도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는 이제 '묻지마 투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푸 지펑 CIO는 "장기적으로 공급망의 각 단계에서 살아남아 승자독식(Winner-takes-all) 할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현재 로봇 주식에 대해 '중립' 의견을 제시했다.

탑스퍼리티 증권의 청 치앙 이코노미스트는 "대량 생산을 통한 비용 절감, 핵심 부품의 국산화, 그리고 실질적인 B2B(기업 간) 수익 모델 창출이 이뤄지는 시점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로봇 산업은 정부의 인위적인 부양책이 걷히고, 실질적인 기술력과 수익성으로 증명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했다. 화려한 로봇 쇼 뒤에 감춰진 거품이 꺼지면서, 진정한 기술 강자만이 살아남는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