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AI 기업, 엔비디아 칩 확보 위해 동남아 훈련 본격화…규제 피해 합법적 우회로 확보

■ 핵심 보기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 반도체 규제 우회 위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에서 엔비디아 고급 칩으로 AI 모델 훈련 중

올해 4월 미국의 H20 칩 추가 규제 뒤 해외 훈련 급증, 트럼프의 '확산 규칙' 폐지로 합법적 경로 확보

딥시크는 예외로 미 규제 이전 확보한 엔비디아 칩과 화웨이 협력으로 국내 훈련 고수


중국 주요 기술 기업이 미국 수출 규제 우회를 위해 동남아시아에서 인공지능(AI) 모델을 훈련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알리바바, 바이트댄스를 포함한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최신 대형언어모델(LLM)을 동남아시아 여러 데이터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 미국이 올해 4월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반도체 H20 판매를 추가로 제한한 뒤 해외 훈련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싱가포르 한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최첨단 모델을 만들려면 최고급 칩이 필요하다"며 "이 모든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은 비중국 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해외 데이터센터와 임대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미국 수출 통제를 준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 허점을 막기 위해 '확산 규칙'을 도입했었다. 이 규칙은 중국 기업이 해외 데이터센터를 통해 고급 AI 칩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들어 규제 완화 기조 아래 이 규칙을 폐기하면서 중국 기업에 합법적 경로가 열렸다.


지난 1년간 알리바바의 첸원(Qwen)과 바이트댄스의 더우바오(Doubao) 모델은 전 세계에서 최고 성능을 보이는 LLM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첸원은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오픈' 모델로 중국 밖 개발자들에게도 널리 채택됐다.

중국 수요 증가에 힘입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 클러스터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들 데이터센터 상당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LLM 훈련에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엔비디아 고급 제품을 갖추고 있다.

말레이시아 기술무역협회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2024년 현재 총용량 504.9메가와트(MW)에 달하는 54개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2021년 대비 거의 두 배 늘어난 규모다. 데이터센터 비용은 싱가포르보다 30%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품질·저비용 AI 모델 제작사로 알려진 딥시크는 예외적으로 중국 국내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딥시크는 미국 수출 금지 조치가 발효되기 전 상당 규모의 엔비디아 칩 클러스터를 미리 확보했다. 또한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 반도체 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해 차세대 중국산 AI 칩을 최적화하고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웨이는 엔지니어 팀을 딥시크 항저우 본사에 상주시키고 있다. 화웨이는 딥시크와의 파트너십을 자사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중국 전역의 AI 훈련에 채택시키기 위한 전략적 노력으로 보고 있다.


AI 모델 개발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훈련' 단계에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AI 모델을 만든다. 이 과정에는 막대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해 대부분 중국 기업은 여전히 엔비디아 고급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추론' 단계는 완성된 AI 모델이 사용자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중국 기업들은 중국산 칩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추론은 전체 AI 작업 부하 중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훈련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성능의 칩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AI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훈련에서 추론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맥킨지앤컴퍼니에 따르면 현재 추론과 훈련 워크로드를 관리하는 서버에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방식이 가장 뛰어나지만, 2030년경에는 특정 AI 작업에 최적화된 주문형 반도체(ASIC) 칩이 최고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이런 추세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화웨이의 어센드 910C 칩은 추론 기능 기준으로 엔비디아 H100의 약 60% 수준까지 성능을 따라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은 엔비디아 A100의 30% 수준에 불과하지만 성능은 80%에 이른다. 중국 정부 보조금 덕분에 가능한 가성비다.

중국은 2026년까지 AI 칩 생산량을 세 배로 늘릴 계획이다. 화웨이는 2025년 말 가동을 목표로 AI 칩 전용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2026년까지 두 곳의 공장을 추가로 신설할 예정이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도 내년에 7나노 칩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칩이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최첨단 하드웨어 성능 면에서는 여전히 엔비디아에 뒤처지지만, '충분히 사용할 만한 수준'의 공급 능력을 확보해 기술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추론 분야에서는 중국 AI 칩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쫓아왔다는 분석이다.

중국 기술 기업들은 훈련 외에도 해외 고객 서비스 제공을 위해 동남아시아 데이터센터를 활용하고 있다. 알리바바와 바이트댄스가 전 세계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모색하면서다. 중국 기업들은 중동 등 다른 지역 데이터센터에 대한 접근도 확대하고 있다.

한 가지 제약은 중국 기술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국외로 반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현지 고객이 제공한 특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맞춤 조정하려면 훈련이 중국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딥시크, 화웨이는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논평을 거부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