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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억 원도 美선 빈곤층”…무너진 중산층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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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억 원도 美선 빈곤층”…무너진 중산층의 ‘비명’

공식 빈곤선의 4배…월가 전문가 "연봉 2억 원 이하면 사실상 빈곤층”
■ 핵심 보기

월가 펀드매니저 마이클 그린이 미국 4인 가족의 실질적 빈곤선은 정부 공식 기준의 4배가 넘는 136500달러(2억 원)라고 주장

1963년 기준에 머물러 있는 공식 빈곤 측정 방식과 주거비·보육비 등 급등한 현대 생활비 간의 괴리를 날카롭게 지적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에 갇힌 중산층의 위기가 부각되면서, 소득 기준과 복지 정책 재설계에 대한 논의가 가열될 전망
미국 내 4인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려면 연간 최소 13만 6500달러(약 2억 원)가 필요하며,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사실상 ‘빈곤층’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내 4인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려면 연간 최소 13만 6500달러(약 2억 원)가 필요하며,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사실상 ‘빈곤층’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미국 내 4인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려면 연간 최소 136500달러(2억 원)가 필요하며,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사실상 빈곤층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미국 정부가 정한 공식 빈곤선의 4배가 넘는 수치로, 물가 상승과 중산층의 붕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9(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월가 전문가의 분석과 이에 따른 경제학계의 논쟁을 보도했다.

공식 빈곤선의 4배… 숨만 쉬고 살아도 2억 원 필요


월가 펀드매니저인 마이클 그린(Michael W. Green)은 최근 자신의 서브스택(Substack)’ 에세이를 통해 4인 가족이 주거, 의료, 보육 등 필수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산출했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136500달러다. 반면 미 보건복지부(HHS)가 규정한 4인 가족 공식 빈곤선은 32150달러(4700만 원)에 불과하다.

그린은 이 격차를 지적하며 미국 가정 대다수가 자신의 기준으로는 빈곤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를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연 소득 4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사이, 고비용 지역에서는 그 이상을 벌지만, 정부의 복지 혜택(푸드스탬프, 메디케이드 등)을 받기에는 소득이 너무 높고, 필수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소득이 턱없이 부족한 계층을 일컫는다.

그린은 인터뷰에서 이들은 경제 활동에 완전히 참여할 만큼 충분한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결혼을 포기하거나 가정을 꾸리는 시기가 늦춰지는 현상은 전통적인 가족 구성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현실성 결여” vs “살인적 물가 반영… 엇갈린 시선


그린의 분석은 경제학계와 대중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케빈 코린스(Kevin Corinth) 연구원은 미국의 중위 소득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빈곤선으로 설정한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며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국(Census Bureau)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가구 중위 소득은 83730달러(12300만 원)였으며, 자녀가 둘 이상인 가구도 109300달러(16000만 원) 수준이었다. 그린이 제시한 136500달러는 미국 37개 주()4인 가족 중위 소득을 웃도는 금액이다.

또 다른 비판론자들은 그린이 주거비나 보육비 등을 산출할 때 평균 비용을 적용한 점을 문제 삼았다. 빈곤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평균 수준의 소비를 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스콧 윈쉽(Scott Winship) AEI 사회이동성센터 소장은 소득은 역대 최고 수준이며, 우리가 더 좋은 집과 안전한 차를 구매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그린의 문제 제기가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컬럼비아대 빈곤사회정책센터의 크리스토퍼 위머(Christopher Wimer) 공동 소장은 그린은 빈곤 학자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공식 빈곤 측정의 낙후성을 건드렸다고 말했다. 현행 공식 빈곤선은 1963년 식료품비 비용의 3배를 기준으로 매년 물가상승률만 반영하는 방식이다. 위머 소장은 가계 예산에서 식비 비중은 줄어든 반면, 주거비 부담은 훨씬 커졌다고 설명했다.

낡은 빈곤 측정 방식, 현실 못 따라가


실제로 다른 기관들이 산출한 생활임금데이터는 그린의 계산과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생활임금 계산기에 따르면, 메릴랜드주에서 두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가 기본 생활을 유지하려면 129572달러(19000만 원)가 필요하다. 경제정책연구소(EPI) 역시 워싱턴 D.C. 인근에서 적당하지만 충분한생활을 하려면 139524달러(2억 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위머 소장은 이러한 수치들은 유용하지만, 박탈과 고통을 의미하는 빈곤과는 구분해야 한다그린의 수치는 빈곤선이라기보다 중산층의 안정적 삶을 위한 기준에 가깝다고 해석했다.

조지메이슨대 알렉스 타바로크(Alex Tabarrok) 교수 또한 그린은 빈곤 측정치를 중산층 측정치로 뒤바꿔 놓았다편안하고 번영하는 중산층의 삶을 기준으로 삼으면 당연히 필요한 금액은 커지지만, 이를 빈곤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 왜곡이라고 꼬집었다.

정책의 사각지대, 해법은 무엇인가


그린의 주장은 단순한 수치 논쟁을 넘어 정책적 시사점을 던진다. 정부 보조를 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과 중산층 하단이 겪는 경제적 압박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그린은 해결책으로 근로장려세제(EITC)의 확대를 제안했다. 현재 두 자녀를 둔 부부 기준 연 소득 64430달러(9400만 원)까지만 혜택을 주는 제도를 개선해, 더 높은 소득 구간의 가구에도 혜택을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택 건설을 가로막는 정부 규제를 철폐해 주거비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린은 우리는 장벽을 세우기보다 삶을 더 쉽게 만드는 방향으로 공공 부문의 초점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란은 빈곤의 정의를 넘어, 고비용 사회에 진입한 현대 자본주의가 중산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묵직한 과제를 남겼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