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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어 AI 못 돌린다”… 5년 대기 ‘전력 병목’에 갇힌 빅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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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어 AI 못 돌린다”… 5년 대기 ‘전력 병목’에 갇힌 빅테크

MS 연간 117조 원 투자 강행… 전력망 접속 대기만 5년, AI 혁명 ‘급제동’
데이터센터 전력난 심화, 제조업계 ‘가상화·하이브리드 노동’으로 돌파구
인공지능(AI)과 로봇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Grid)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기술 혁신의 최대 ‘병목(Bottleneck)’이 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과 로봇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Grid)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기술 혁신의 최대 ‘병목(Bottleneck)’이 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공지능(AI)과 로봇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Grid)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기술 혁신의 최대 병목(Bottleneck)’이 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데이터센터를 지어도 정작 전기를 공급받지 못해 가동을 멈춰야 하는 전력 보릿고개가 현실화하고 있다.

매뉴팩처링 다이브는 9(현지시각)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도입 확산이 전력망 한계라는 물리적 장벽에 부딪혔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수십조 원의 투자를 단행하고 있음에도 전력 공급 지연으로 사업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지난달 1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IFS 인더스트리얼 X 언리쉬드행사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전력망 부족 사태가 AI 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빈 에를링하겐 지멘스 그리드 소프트웨어 최고경영자(CEO)데이터센터 건설이 늘고 자동화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력망이 AI 혁명의 최대 위험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에를링하겐 CEO는 미국 전기제조업협회(NEMA)의 지난 4월 보고서를 인용해 오는 2050년까지 전력 수요가 50%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AI 연산을 처리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인구 12500만 명인 일본 경제 전체가 사용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전력수요 폭증은 곧장 전력망 접속 지연으로 이어졌다. 에를링하겐 CEO과거 2~3년 수준이던 전력망 접속 대기시간이 최근 평균 5년으로 늘어났다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에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5년을 기다리라고 한다면 AI 혁명 속도는 현저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새로운 송전망을 건설하려면 인허가와 자재 수급에 수년이 걸리는 만큼, 기업들이 유틸리티 업체와 협력해 기존 전력망의 송전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MS, 매주 2조 원 투자… 전기 확보총력전


전력망 제약에도 불구하고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는 공격적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릴 윌리스 MS 에너지 및 자원 산업 부사장은 “2022년 연간 200억 달러(29조 원) 수준이던 데이터센터 인프라 지출이 현재 연간 800억 달러(117조 원)로 불어났다고 밝혔다. 이는 매주 약 15억 달러(2조 원)를 쏟아붓는 셈이다.

윌리스 부사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이중고를 해결하고자 혁신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MS는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친환경 시멘트와 물 사용 효율화, 마이크로 냉각 기술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해법은 가상화… 공장 가동 전 디지털 리허설로 낭비 줄여

전력과 자원 부족 위기 속에서 제조업계는 가상화(Virtualization)’로봇에서 생존 해법을 찾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상화란 실제 공장과 똑같은 환경을 컴퓨터 속 가상 공간에 쌍둥이처럼 구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마치 비행 조종사가 시뮬레이터로 훈련하듯, 제품을 실제로 생산하기 전에 가상 공간에서 미리 기계를 돌려보고(시뮬레이션), 최적의 작업 방식을 찾아내는 디지털 리허설인 셈이다.

프라사드 사티아볼루 액센츄어 인더스트리 X 아메리카 책임자는 제조업체들이 물리적 환경을 가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과 로봇이 협업하는 하이브리드 인력을 운용하는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가상화를 도입하면 실제 기계를 돌리며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줄여 막대한 전력 소모와 자재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사티아볼루 책임자는 이러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디지털 쌍둥이)’ 기술과 AI 기반 물류를 활용하면, 단순 예측 생산을 넘어 실제 주문에 맞춰 즉각 대응하는 수요 중심 제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액센츄어가 공장 관리자 5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중기적 우선순위로 자동화를 꼽았다. 이들은 가상화 기술과 연동된 자율 창고, 무인 운반차(AGV), 이동 로봇 도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티아볼루 책임자는 가상화는 수요 변동을 정확히 예측하고 공급망 혼란을 방지하며, 재고 관리를 최적화하는 미래 제조업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력망 특별법시행됐지만… 갈 길 바쁘다, “반도체·AI, ‘주민 수용성이 관건


글로벌 전력망 병목 현상은 한국에서도 발등의 불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전력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송전망 확충 속도는 여전히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국가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9년까지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현재의 6배 이상 급증할 전망이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의 60% 이상이 전력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에 몰려 있어 전력 공급 능력은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다. 경기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역시 2050년까지 1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다. 송전망 건설 기간을 단축하고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지난 227일 국회를 통과해 926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법의 시행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위원회가 설치되고, 인허가 절차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 제정은 시작일 뿐, 실제 착공과 완공이 늦어지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한다. 법적 절차가 간소화됐더라도 송전탑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보상 문제라는 난제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전력이 추진 중인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 선로 건설은 주민 반대로 완공 목표가 수차례 지연되었다.

시장에서는 송전망은 AI와 반도체 산업의 혈관과 같다특별법이 시행된 만큼 정부는 이제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건설 속도를 높이는 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력 공급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기껏 유치한 첨단 기업들이 전기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엑소더스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