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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안보 동맹’ 시대 개막... 미·DRC ‘14조 원 인프라·광물 빅딜’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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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안보 동맹’ 시대 개막... 미·DRC ‘14조 원 인프라·광물 빅딜’의 경고

단순 교역 넘어 ‘탐사·인프라·안보·ESG’ 결합한 통합 동맹체로 진화
美, 콩고에 100억 달러 인프라·치안 지원하고 핵심광물 접근권 확보
‘장기 공급 계약’ 중심 시장 재편 가속... 한국, ‘팀 코리아’ 전략 시급
자원 부국(富國)에서 광물을 사 오던 단순 ‘교역(Trade)’의 시대가 저물고, 국가 안보와 인프라 개발, 치안 유지를 통째로 맞교환하는 ‘포괄적 자원 안보 동맹(Resource Security Alliance)’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자원 부국(富國)에서 광물을 사 오던 단순 ‘교역(Trade)’의 시대가 저물고, 국가 안보와 인프라 개발, 치안 유지를 통째로 맞교환하는 ‘포괄적 자원 안보 동맹(Resource Security Alliance)’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글로벌 자원 외교의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과거 자원 부국(富國)에서 광물을 사 오던 단순 교역(Trade)’의 시대가 저물고, 국가 안보와 인프라 개발, 치안 유지를 통째로 맞교환하는 포괄적 자원 안보 동맹(Resource Security Alliance)’의 시대가 도래했다. ·중 패권 전쟁의 최전선이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소재인 광물 공급망으로 옮겨붙으면서 나타난 거대한 지각변동이다.

해외 자원 전문매체 디스커버리 얼럿은 지난 11(현지시간) 최근 미국과 콩고민주공화국(DRC)이 체결한 파트너십이 이 같은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협정은 단순한 자원 확보를 넘어, 서방 진영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을 중국의 영향권에서 떼어내기 위해 어떠한 전략적 카드를 내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다.

단순 채굴 넘어선 패키지 딜’... 인프라·안보 통합 지원


현대 광물 안보 협정의 핵심 키워드는 통합성(Integration)’이다. 과거에는 민간 기업이 광산 채굴권만 따내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탐사, 채굴, 가공은 물론 도로·전력 등 인프라 건설과 해당 국가의 치안 유지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제공한다.

미국과 DRC의 협력 모델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은 코발트와 콜탄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광물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DRC에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와 안보 지원을 약속했다. DRC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정은 미국과 콩고 정부가 DRC의 경제적 변혁을 위해 필수적 여러 프로젝트를 긴밀히 추진하기로 합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프라 투자의 규모다. 양국 협력의 상징인 그랜드 잉가(Grand Inga)’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초기 투자비만 100억 달러(146700억 원)를 웃돈다. DRC 당국은 이 프로젝트가 완공될 경우 43200메가와트(MW)의 전력을 생산해 만성적인 전력난을 해소하고 아프리카 중부의 에너지 지형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대서양 연안의 앙골라 로비토 항구와 내륙 광산 지대를 철도로 연결하는 로비토 회랑(Lobito Corridor)’ 건설 사업은 광물 운송의 동맥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침투하는 경제 고속도로가 될 전망이다.

피 묻은 자원꼬리표 뗀다... ESG와 안보의 결합


이번 협정은 과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식 수탈이나 냉전 시대의 자원 확보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동시에 광산 지역의 고질적인 불안 요인인 무력 분쟁을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안보 개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협정문에는 광물 채굴 지역의 불법 무장 단체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담겼다. 군사 훈련 지원, 장비 제공, 불법 광물 거래 차단을 위한 정보 공유 등이 대표적이다. DRC 측은 이를 통해 , 콜탄, 코발트의 밀수 네트워크를 차단하여 분쟁 세력의 자금줄을 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는 안정적인 광물 공급을 위해서는 채굴 현장의 물리적 안전정치적 안정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서방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워싱턴 협정(Washington Accords)’ 하의 모든 거래가 평화를 경제 협력의 전제 조건으로 명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터리·반도체 핵심 광물 확보전... ‘탈중국가속


이러한 포괄적 파트너십의 이면에는 전기차(EV) 배터리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필수 소재를 확보하려는 서방의 절박함이 작용한다.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DRC를 중국의 손아귀에 두어서는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콜탄(Coltan) 확보 또한 주요 의제다. DRC 관계자는 아이폰을 비롯한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우리의 자원으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우리는 소외됐었다“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자원 접근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서방의 이러한 움직임이 중국이 장악한 광물 가공 및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리튬,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제련과 가공 공정 대부분이 중국 내에서 이뤄지고 있어, ·중 갈등 등 지정학적 위기 발생 시 공급망이 일시에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방 국가들은 채굴국 현지에 가공 시설을 직접 구축하고, 장기 공급 계약을 통해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물 시장 위축되고 장기 계약부상... 시장 구조 재편


광물 안보 동맹의 확산은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그동안 런던금속거래소(LME) 등에서 가격이 결정되던 현물(Spot) 중심의 시장이 국가 간, 기업 간 장기 공급 계약(Long-term Contract)’ 위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는 대신 시장의 유동성을 줄이고 가격 투명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배터리 및 기술 기업들이 광산 개발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거나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는 사례가 늘면서, 전통적인 원자재 트레이딩 기업들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디스커버리 얼럿은 이러한 변화는 현물 시장에 풀리는 광물 공급량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전략적 파트너십에 끼지 못한 국가나 기업들의 자원 접근성을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정학적 리스크 여전... 신중한 접근 필요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 부국의 정치적 불안정성, 인프라 개발의 지연 가능성, 그리고 기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중국의 반발 등은 여전히 큰 리스크 요인이다. 펠릭스 치세케디 DRC 대통령 역시 약속된 번영이 현실화하려면 30년 넘게 이어져 온 분쟁을 끝내고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언급하며 현실적인 난관을 인정했다.

자원 외교가 안보 문제와 직결되면서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단순히 경제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국제 정세와 해당 국가의 안보 상황, ESG 리스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난제(aporia)를 안게 된 셈이다.

자원 빈국한국, ‘팀 코리아로 승부해야


미국과 DRC가 보여준 자원 안보 동맹모델은 핵심 광물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이 주목할 이슈이다. 특히 리튬, 코발트, 흑연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대중(對中)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입장에서, ·중 공급망 블록화와 자원 민족주의의 결합은 생존을 위협하는 변수다.

문제는 한국이 미국처럼 강력한 군사적 지원이나 천문학적인 기축통화 자본을 앞세워 패키지 딜을 제안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처럼 막대한 차관을 제공하며 자원을 싹쓸이하는 방식도 우리에겐 불가능하다.

해법은 팀 코리아(Team Korea)’ 전략과 기술 교환에 있다. 정부는 ODA(공적개발원조) 자금을 마중물로 삼고, 민간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제조 기술과 정유·화학 플랜트 건설 역량을 제공하는 한국형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광물을 사 오는 것을 넘어, 현지에 정제 공장을 지어주고 기술을 이전하며 가치 사슬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이 절실하다.

아울러 미국 주도의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 다자 협의체 내에서 로비토 회랑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 컨소시엄에 적극 참여해 지분을 확보하는 실리적 접근도 필요하다. 자원 외교가 곧 안보인 시대,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글로벌 자원 전쟁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