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로 갈 곳 잃은 재고를 해외로 밀어내는 '불황형 흑자'의 심화.
글로벌 보호무역 장벽 강화 초래... 한국 등 수출 경쟁국에 타격 불가피
글로벌 보호무역 장벽 강화 초래... 한국 등 수출 경쟁국에 타격 불가피
이미지 확대보기중국이 자국 내에서 소화하지 못한 과잉 재고를 해외로 쏟아내며 사실상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수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역 흑자 1조 달러의 역설... "성장 엔진 고장 났다"
FT는 이날 에스워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중국 경제가 처한 구조 위기를 집중 조명했다. 프라사드 교수는 곧 출간할 저서 '파멸의 고리(The Doom Loop)'에서 세계 경제 질서가 무너지는 원인을 분석한 석학이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1~11월 무역흑자 1조 달러 달성은 겉보기에 화려한 실적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국 경제 모델이 지속 불가능한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 정부는 빚을 내 투자를 늘리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떠받쳤다. 하지만 노동 인구는 줄고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이다.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과 고용 부진이 맞물려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 공장에서 물건은 쏟아지는데 국내에서 사줄 사람이 없으니, 기업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프라사드 교수는 "공장 생산량과 국내 소비 간 불균형 탓에 수출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된 셈"이라고 진단했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 아닌 짐"... 쏟아지는 '저가 공세'
문제는 중국의 '수출 올인' 전략이 세계 경제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과거 중국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전 세계 소비 수요를 갉아먹는 '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국유기업 중심의 과잉 투자는 생산성 향상이나 기업 이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가 민간 기업을 옥죄고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으면서 민간 투자는 얼어붙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반(反) 내권(involution·과당경쟁)' 정책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기업 간 출혈 경쟁을 막겠다며 정부가 개입했지만, 오히려 시장 심리만 위축시켜 투자가 급정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나 신용 완화 같은 통화 정책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이에 중국발 저가 상품이 전 세계로 쏟아지면서 각국 제조업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물리자, 중국은 다른 국가로 수출 물량을 돌리며 대응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 역시 제조업 기반이 약해 중국산 공세에 취약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 장벽 강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위안화 약세 용인 논란... "구조 개혁만이 살길"
중국 당국이 수출을 늘리려 환율을 이용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1년간 위안화 가치는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 대비 하락했다. 막대한 무역 흑자를 내는 나라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프라사드 교수는 "중국 인민은행이 시장 흐름에 맞춰 위안화 가치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중국의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위안화가 국제 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사는 길은 명확하다. 서비스업을 키워 고용을 늘리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 가계가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GDP 성장률 수치에만 매달려 수출로 경기를 띄우려 한다면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FT는 "중국은 수출로 지탱하는 허울뿐인 성장률 대신, 경제 체질을 뜯어고치고 무역 흑자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중국과 세계가 공존하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韓, '차이나 쇼크'의 파편 피할 수 있나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이 초래한 보호무역 장벽은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에 치명적인 연쇄 작용을 예고한다. 이미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 산업에서 중국산 저가 공세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 EU 등이 중국을 겨냥해 세운 무역 장벽이 한국 기업에도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과잉 생산 물량이 제3국 시장으로 우회하면서 한국 제품과 경합하는 빈도 또한 늘어나고 있다. '중국 특수'가 사라진 자리에 '중국 리스크'만 남은 상황이다. 정부와 기업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시장 다변화와 함께,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