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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잠기고 ‘전력’에 굶주리다… 2026년 에너지 시장의 거대한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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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잠기고 ‘전력’에 굶주리다… 2026년 에너지 시장의 거대한 모순

석유 공급 과잉으로 유가 하락 압박… IEA “하루 400만 배럴 흑자 형성”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쇼크’ 현실화… 새로운 안보 제약은 ‘배럴’ 아닌 ‘전자’
천연가스, 글로벌 재연결 통해 ‘에너지 안보’ 가교 역할… LNG 수출 정점
사진=구글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구글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2026년 에너지 시장은 유례없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했다. 전 세계적으로 원유는 넘쳐 나며 가격 하락의 압박을 받고 있는 반면, 인류가 가장 신뢰해온 에너지 자원인 ‘전력’은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공급 부족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6년은 에너지 안보의 정의가 ‘석유’에서 ‘전력’으로 완전히 뒤바뀌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전망이라고 에너지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가 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 석유의 시대 저무나…‘대서양 삼위일체’ 주도로 공급과잉 심화


지난 반세기 동안 글로벌 경제를 흔들었던 ‘석유 부족’의 공포는 2026년 현재 옛말이 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 세계 석유 시장에서 하루 약 400만 배럴에 육박하는 비정상적인 수준의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거 유가를 좌지우지했던 지정학적 ‘공포 프리미엄’은 힘을 잃었으며, 생산의 중심축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넘어 미국·브라질·가이아나로 구성된 ‘대서양 분지 삼위일체’로 옮겨갔다.

특히 가이아나의 해상 유전 개발은 현대 석유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며 공급 폭탄의 뇌관이 됐다.

여기에 세계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전기차(EV) 도입을 가속화하며 구조적인 수요 감소 단계에 진입함에 따라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60달러 선 사수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 전력망의 반격…AI 데이터센터가 불러온 ‘전력 부족’ 위기


석유 시장이 약세장에 진입한 것과 대조적으로 전력 시장은 사상 초유의 ‘쇼크’를 겪고 있다. 2025년이 인공지능(AI)의 엄청난 에너지 식성에 대해 경고한 해였다면, 2026년은 그 식탐이 노후화된 전력망이라는 물리적 현실과 정면 충돌하는 해다.

미국 전력망 운영사 PJM 인터커넥션의 용량 경매 가격 급등은 전력 부족이 더 이상 미래의 가설이 아님을 증명했다. 데이터센터, 산업 재정비(Reshoring), 전 부문의 전기화가 맞물리며 지난 20년간 정체됐던 전력 부하가 매년 2~3%씩 급증하고 있다.
해가 지면 멈추는 태양광이나 바람에 의존하는 풍력만으로는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상시 가동(24/7)’ 신뢰성을 충족할 수 없게 되면서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 발전이 다시금 기저 전력의 핵심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 천연가스의 가교 역할…LNG 수출 ‘슈퍼 사이클’ 진입


이러한 모순 속에서 천연가스는 석유와 전력을 잇는 핵심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골든패스(Golden Pass)와 플라크민스(Plaquemines) 등 초대형 LNG 수출 시설들이 본격 가동되면서 미국산 가스는 글로벌 에너지 안보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수출 능력이 대폭 확장됨에 따라 북미 내수 가스 가격은 안정적인 하한선을 형성하게 됐으며, 러시아 가스로부터 독립하려는 유럽에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 경제를 지탱하는 신뢰할 수 있는 전력원으로서 그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

◇ 투자 패러다임의 변화…상류보다 ‘인프라와 전력망’


에너지 시장의 이분화는 투자 지도 역시 바꾸어 놓았다.

유가 하락 압박을 받는 원유 탐사·생산(Upstream) 기업들의 매력도는 낮아진 반면, 가격 변동과 상관없이 물량에 따라 수익을 내는 파이프라인과 수출 터미널 등 중류(Midstream) 인프라 기업들이 승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2026년 현재 가장 가치 있는 실물 자산은 사무실 부지가 아닌 ‘전력망 상호 연결(Grid Interconnection)’ 권한이다. 무분별한 확장보다는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확보한 유틸리티 기업들이 성장의 주역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결국 2026년의 에너지 전쟁은 ‘자원 확보’가 아니라 ‘인프라 구축’의 싸움이다. 세계는 석유에 잠기고 있지만 전력에는 굶주려 있다.

이 거대한 모순을 이해하고 전력망 인프라와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원 확보에 집중하는 국가와 기업만이 다가올 10년의 경제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